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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No1.
▲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애섭

종갓집에서 태어나 종부로 시집온 그녀는 평생 남도 요리의 정수를 익혔다. 특히 통과의례 음식을 재현하며 대가 반열에 올랐는데, 문화유산을 재해석한 창의적인 감각으로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도 설립했다. 구심점은 전통에 두되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삶.

정성 가득한 이애섭 음식장의 차림에서 곱고 예쁜 전라남도가 펼쳐졌다. 옛것을 지키는 것만이 전통은 아니다. 오늘의 향토 음식이 머지않아 뿌리가 되고, 거리에서 즐기던 간식거리가 새로운 한국 정통의 맛이 되기도 한다. 또 고조리서나 구전되는 선조의 조리법엔 시대를 초월한 아이디어와 지혜도 엿보인다.

시간의 간극을 따라가면 무수히 많은 먹거리와 식문화가 제각기 색깔을 드러낸다. 국가가 보유한 전통 음식 명장은 이 중심에 서 있다. 벌어진 틈을 좁히며 구슬을 꿰듯 시간을 잇는 일. 대대로 전해진 집안의 내림 음식을 오늘에 맞게 변주하고, 향토 음식을 발굴할 때 유연한 전통은 되살아난다.

♣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요리나 일상적인 반상차림을 넘어 의례 음식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인가?

나고 자란 곳이 전남 보성이었는데, 친정이 종갓집에 서재필 선생 외가라 찾아오는 객식구가 끊이질 않았다. 늘 잔칫집 분위기여서 어릴 때부터 솜씨 좋은 어머니를 도와 이것저것 음식을 참 많이도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물무침이나 반찬거리뿐 아니라 품이 드는 화려한 요리에도 관심이 생겼다.

또 장성(전라남도)으로 시집을 오니 시댁도 종갓집에, 종부가 되는 숙명도 받아들여야 했다. 다달이 제사를 지내고 손님치레도 잦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요리를 접하고 빠져들었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장 이애섭 No2.

♣ 사실 의례 음식은 조금 낯설다. 남도 의례 음식의 특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치는 여러 기념할 만한 의례를 ‘통과의례(通過儀禮)’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통과의례는 주로 가정 내에서 행하는 가정의례로, 규범에 따른 의식에 맞게 음식을 마련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차림이 화려한데, 사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일상적인 식사와 맞닿아 있다. 단 좀 더 보이는 멋, 치장에 각고의 정성을 들인다. 특히 전통적인 통과의례는 사람으로서 사는 데 필요한 행위 규범을 제시하고 인생을 오마주한 음식을 선보인다.

의례 형식은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지만 전라남도 의례 음식이 유독 향토색이 짙은 편. 논과 밭, 바다, 강 그리고 산에서 얻은 무궁무진한 식재료로 다채로운 요리를 내놓는데, 폐백 시 ‘봉황오링’은 반드시 준비한다.

전라남도(전라도)에서 폐백을 대표하는 귀한 음식으로 문어로 꼬리를 만들고 오징어로 기교를 부려 꽃처럼 빚은 뒤 한 마리의 봉황을 만든다. 한마디로 해산물을 더욱 다채롭게 활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의례 음식 No3.

♣ 봉황오링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나?

폐백에서 가장 중요한, 집안을 흥하게 하고 번영케 하는 의미를 가졌다. 보통 봉황오링엔 백문어 한 마리가 들어가는데, 꼬리에 백색과 흑색으로 대비되는 색을 넣을 때 필요하다.

하지만 형편상 문어를 쓸 수 없다면 오징어로 닭 모양을 만드는 ‘오징어 닭’이나 튀긴 닭 두 마리를 색깔 들인 한지로 싸는 ‘한지 닭’을 대신 올리기도 한다.

이때도 전라도에서 수컷은 양(陽)을 뜻하므로 음(陰)의 색인 남색으로 꾸미고, 암컷은 음(陰)을 뜻하므로 양(陽)의 색인 홍색을 입혀 음양의 조화를 완성한다.

또 전라남도(전라도) 폐백상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게 폐백닭. 마른 오징어로 깃털을 만들어 닭에 옷을 입힌 ‘오징어 오림닭’을 철칙처럼 내놓는다.

♣ 2006년 국가를 대표하는 ‘제17호 무형문화재’에 등재됐다. 어떻게 남도의례음식장의 자리까지 올랐나?

앞서 언급했듯 ‘의례 음식’이 아주 특별하거나 생소한 건 아니다. 오히려 전라남도의 개성을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시리즈처럼 보여준다. 사실 처음엔 그저 요리가 좋아 의례 음식을 재현하는 데 심취했다.

그러다 2006년 광주시 무형문화재 인증서를 받으며 지역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친정과 시댁의 내림 음식을 누군가에게 전수하면 향토 음식으로, 다시 전통문화로 단단히 뿌리 내릴 것 같았다. 그때부터 기본에 집중해 식재료와 식문화를 탐문하듯 살폈다.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고 요리와 연구를 거듭했다. 결국 2012년 유맹자 교수(송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와 책 「의례음식과 상차림」을 냈고 작은 발자국이나마 찍을 수 있었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봉황오링 No4.

전통적인 통과의례는 사람으로서 사는 데 필요한 행위 규범을 제시하고 인생을 오마주한 음식을 선보인다. 전라남도 의례 음식이 유독 향토색이 짙은 편. 논과 밭, 바다, 강 그리고 산에서 얻은 무궁무진한 식재료로 다채로운 요리를 내놓는다.

♣ 「의례 음식과 상차림」은 전라남도 음식 전반에 대한 기록문화유산 같은 느낌도 든다.

전라남도에서 익히 알고 익숙한 전통 음식은 대부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의례 음식을 정리하며 참고할 요량으로 여러 차례 고문헌을 살폈는데, 안동 쪽 종가나 조선 시대 궁중 음식 기록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남도 종갓집 음식이나 전라남도 민간 음식에 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찾기 힘들었다.

굳은 결심 후 내가 알고 연구한 내용만이라도 세상에 남도록 천신만고 끝에 책을 출간했다.

♣ 남도 음식 명장으로서 이해하는 전라남도 음식의 매력은 무엇인가?

전라남도 음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게미’가 있다. 사투리로 전라도 특유의 깊고 진한 감칠맛을 뜻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연중 사계절 따뜻한 기후에 여름이 긴 날이 한몫해 저장하고 발효하는 음식이 발달했다.

수산물을 말리거나 염장하는 문화도 날씨에 기인한다. 맵고 짠 양념이 아낌없이 들어가 간이 센 편. 젓갈을 버라이어티하게 써 뱃속 아래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풍미가 남다르다.

오래토록 감도는 혀끝의 여운은 두말하면 잔소리. 거짓말 좀 보태면 아흔아홉 가지 나물 반찬에 젓갈, 생선구이, 꿩과 닭을 비롯한 고기 요리 등 그릇마다 수북이 담은 상차림에서 푸짐한 여유가 전해진다.

한편 전라남도 의례 음식은 품격 있는 차림새의 대표 주자. 결마다 보이는 손끝의 미학이 아트를 방불케 한다. 먹기 아깝단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올 만큼 시각적인 매력이 눈부시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봉황오링 No5.

♣ 남도를 돌며 꽤 넓은 땅덩어리인 걸 실감했다. 놓치면 후회할 각 지역 시그너처 음식을 소개해달라.

맞다. 남도는 내륙과 해안, 산간 지방으로 이뤄져 식재료가 차고도 넘친다. 그중 광주 향토 요리로 ‘애저찜’이 유명하다. 어미 돼지가 임신했을 때 태중에 살아 있는 새끼 돼지만 빼내 찌는데 연한 살코기가 일품. 잔인하긴 하지만 이것도 전통이다.

해안 쪽으로 가면 흑산도 홍어찜과 영광 굴비가 짭조름한 바다 향을 건넨다. 최근 다른 곳에서 잡은 조기도 영광의 해풍을 쐬면 ‘영광 굴비’로 친다는 얘길 들었다.

그만큼 영광의 지리적 조건은 일미를 낳기에 탁월하다. 세발낙지를 통째로 볏짚에 말아 양념장을 발라 굽는 영암의 낙지호롱구이도 빼놓을 수 없다.

재료 본연의 맛이 쫄깃한 식감으로 차오를 때 게미가 끝내준다. 자라와 영계를 끓인 용봉탕은 전라남도 어느 지역에서나 즐긴 보양식. 궁중 요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유와 풍류를 담은 남도의 꽃, 꽃송편도 맛볼 것. 흔히 아는 송편을 곱디고운 꽃처럼 빚어 손님상에 내놓기 좋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봉황오링 No6.

전라남도 의례 음식은 품격 있는 차림새의 대표 주자. 결마다 보이는 손끝의 미학이 아트를 방불케 한다. 먹기 아깝단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올 만큼 시각적인 매력이 눈부시다.

♣ 전라남도 김치는 흉내 낼 수 없이 고고하고 깊은 맛을 낸다. 음식장이 만드는 김치 비법이라면?

알다시피 남도 김치는 젓갈을 많이 쓴다. 멸치젓, 황석어젓, 갈치젓, 새우젓, 조기젓 등 대개 4~5가지를 섞어 쓰는데 비법이라면 숙성. 젓갈을 그냥 쓰지 않고 2년 이상 곡물로 채운 항아리에 숙성시켜 깊은 맛이 최고치에 달할 때 김치 양념으로 버무린다.

♣ 소위 ‘금손’ 같다. 강정 하나, 다식 하나에서도 모던하고 젊은 감각이 느껴지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나?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처음부터 담음새는 물론 음식 자체 비주얼에도 신경을 썼다. 식용 꽃을 예쁘게 말려 깨강정에 얹고, 격자무늬나 줄무늬, 육각, 팔각 등 패턴 디자인을 살려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불어넣기도 했다.

섬세한 플레이팅은 한식에도 있다. 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민하는데 마이크로 사이즈 다식도 여기서 탄생했다. 앙증맞은 멋을 강조하니 젊은 친구들의 흥미를 끌더라. 계속해서 독창적이면서도 아티스틱한 전통 요리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No9.

♣ 나물 반찬 중 전라도에서 인기 있는 고사리를 활용한 레시피를 전수해줄 수 있나?

고사리가 맛있을 때다. 생고사리를 말랑하게 데치거나 말린 고사리를 불려 데친 후 국간장과 다진 파, 마늘 등으로 양념해 팬에 무르게 볶다가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는다.

이때 다진 소고기를 섞어 함께 볶는데, 멸치 육수와 들깨 가루를 차례로 넣어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 볶는다. 고기가 들어가면 고사리만 볶을 때보다 풍미가 깊고, 씹을수록 은은하게 고기 맛이 배어난다.

♣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연 지 3년째라고 들었다. 남도의 전통을 계승하는 심장부 같은 곳인가?

지역 대표 무형문화재로 활동하며 광주시 전통문화관에서 의례 음식을 시연하거나 가르치는 수업을 해왔다. 가끔 전시회도 가졌는데 여럿이 공간을 함께 쓰다 보니 규모가 다소 아쉬웠다. 나만의 연구실(주방)에서 체계적으로 전통을 가르치고 싶은 욕구도 커져갔다.

2015년 꽤 오랜 준비 끝에 전수자인 딸과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열었고, 남도의 전통 음식을 계승하고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을 발굴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특히 남도의례음식의 토착성과 풍속에 주목해 전통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국내외로 전하고 있다.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남도전통음식문화연구원 No7.

남도의 전통 음식을 계승하고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을 발굴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특히 남도의례음식의 토착성과 풍속에 주목해 전통문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국내외로 전하고 있다.

♣ 연구원을 운영한 이래 가장 뿌듯한 성과로 기억되는 게 있다면?

광주에도 다문화 이주 여성이 늘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 전통 음식을 모른 채 한국에 정착하는데 혼례로 한 가족을 이룬 만큼 전통 음식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태어날 후손에게도 식문화 전수는 필요할 것 같았다.

이렇게 탄생한 다문화 가족 요리 수업. 누구나 따라 하기 쉽게 프로그램을 짜 지난 2년간 기본적인 식습관부터 식사 예절, 김치 담그기 등을 차근차근 교육해왔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고 만족도도 높았다. 올해는 수업을 잠시 멈췄는데, 정부 차원에서 힘을 보태준다면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

♣ 올해 계획한 목표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남도의례음식뿐 아니라 향토 음식과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다면 지역사회와 연계한 축제나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싶다.

또 올해는 아직까지 작은 전시에만 음식을 내놓았는데, 시간을 들여 참신한 기획 시리즈를 준비해 큰 전시에서 음식을 선보이고 싶다. 가능하면 전수자인 딸과 제자들도 함께.

남도 전통을 살리는 모던 감각 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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