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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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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5. 옛날 옛날부터 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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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세종대왕은 어떤 김치를 먹었을까?

김치를 누가 처음 어떻게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김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재료로 더욱더 정성스럽고 영양 가득한 음식으로 변화되어 왔다. 김치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농사를 지어 곡식을 수확하고 밥을 지어 주식으로 먹었다. 그래서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한 음식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탄수화물을 잘 소화시키려면 짠 음식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채소를 소금에 절여서 짠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절인 음식은 쉽게 변하지 않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것이 변하고 변해서 지금의 김치가 되었다. 그렇다면 김치는 어떤 변화를 거듭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일까? 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세종대왕은 어떤 김치를 먹었을까?

고려시대의 김치는 그 전까지 만들어 먹었던 장아찌류와 크게 달라졌다. 파, 마늘과 같은 향신료를 가미한 양념 침채류와 동치미, 나박김치, 장김치와 같은 국물 김치류를 만들어 먹으면서 그 모습과 용도가 달라진 것이다.

조선시대 동치미

* 조선 전기에 살았던 세종대왕(1397~1450)은 안타깝게도 빨간 고추로 맛깔나게 버무린 배추김치를 먹지 못했다. 고추가 들어오기 훨씬 전인데다 배추가 아직 김치의 주원료로 사용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대신 여러가지 재료를 듬뿍 넣어 맛을 낸 김치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물기가 많은 습식 음식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은 향신료 등을 이용하여 점차 염도를 줄이고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동치미와 같은 물김치 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조선시대 전기 세종대왕 때 간행된《농사직설(農事直說, 1492)》이라는 책에는 당시 상황에 맞는 농사 기술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책 덕분에 조선의 농사는 크게 발달할 수 있었고 김치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김치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인 소의 재배 기술이 발달했고, 외국에서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오면서 소의 재료도 다양해졌다. 우리가 김치라고 하면 떠오르는 재료인 배주는 조선 초기에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라 주로 무, 오이, 가지 등으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특히 16세기말 경 호박, 고추 등의 식품이 전래되었는데 그 가운데 고추가 김치 양념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고추를 사용하면서 김치의 맛과 모양에 큰 변화가 생겼다. 고추가 김치에 쓰였다는 기록은 1600년대 발간된 이서구의 문집에 나온다.

오이에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가 먹었고 이후엔 젓갈도 다양하게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집필된《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라는 문헌을 보면 41가지나 되는 다양한 종류의 김치 형태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추가 18세기경 김치의 재료로 쓰이면서 김치가 잘 쉬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소금 사용량이 줄어들게 되어 장아찌형 김치보다 효과적으로 유산균의 양이 증가하였고, 동물성 발효식품인 젓갈의 비린내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조선 후기 어업이 발달하여 각종 해산물과 젓갈을 이용한 김치가 많아졌다. 1800년대 중엽 이후 배추의 품종개량에 성공하면서 배추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넣어 발효시킨 통배추김치의 제법이 완성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조선 전기에 살았던 세종대왕(1397~1450)은 안타깝게도 빨간 고추로 맛깔나게 버무린 배추김치를 먹지 못했다. 고추가 들어오기 훨씬 전인데다 배추가 아직 김치의 주원료로 사용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대신 여러가지 재료를 듬뿍 넣어 맛을 낸 김치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 농사직설(農事直說, 1492)
■ 속이 꽉 찬 김치 이야기

♣ ‘김치’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김치를 의미하는 우리말에 김치와 지가 있다. 한글이 창제된 것은 세종대왕 때이므로 그 전까지 김치를 뜻하는 한자어로 저, 지, 지염, 침채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우리말 김치와 지가 먼저 존재하였고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기 위해 침채, 저 등의 한자어를 쓴 것인지, 이들이 변하여 김치와 지로 정착하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바는 없다. 지의 흔적은 ‘섞박지’, ‘젓국지’ 등의 김치 명칭에 남아 있다.

김치의 옛말인 딤채라는 말의 흔적은《훈몽자회(訓蒙字會, 1527)》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어린이용 한자교 습서인《훈몽자회》에 한자어 저(范)를 ‘딤채’라고 소개한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김치의 옛 발음이 딤채였음을 알 수 있다.

이규보의《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1241)

* 이규보의《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1241)》에 실린 ‘소금에 절인 순무’를 노래한 글이 장아찌 형태의 김치를 먹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본다.

‘소금에 절인 채소’라는 뜻의 한자인 ‘침채(沈菜)’에서 딤채 그리고 침채를 거쳐 김치로 변했다는 견해가 있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딤채’라는 고유 우리말을 ‘침채(沈菜)’라는 한자어의 음과 뜻을 빌려 표기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저(范)’라는 글자는《고려사(高麗史, 1451)》내용 가운데 원구단 제사 음식 기록에 처음 등장하지만 어떤 음식이었는지 정확한 형태를 알 수는 없다.

이규보의《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1241)》에 실린 ‘소금에 절인 순무’를 노래한 글이 장아찌 형태의 김치를 먹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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