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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태국에 빠지다 ‘쿤쏨차이’ 김남성 셰프

태국에 빠지다 ‘쿤쏨차이’ 김남성 셰프

무려 18년 전, 한국에 태국 요리가 생소하던 시절 주방에 첫 발을 디딘 이후 국내 대중에게 태국 요리가 널리 알려지는 데 한 획을 담당한 김남성 셰프. 현재 태국 레스토랑 쿤쏨차이의 오너셰프로 무궁무진한 태국 음식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를 만나, 태국 음식과 사랑에 빠진 이유와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물었다.

Q. 태국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적은 없고, 우연처럼 태국 음식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칠 무렵, TV를 보는데 출연진이 벌칙으로 태국 고추를 먹는 장면이 나왔어요. 그 작은 고추가 맵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어떤 맛일지 너무 궁금해지며 식재료에 단숨에 매료되었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실증을 잘 내는 성격이었어요. 좋게 표현하면 호기심이 많고, 나쁘게 말하자면 끈기가 없었죠. 그런 제가 단 한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 바로 태국 음식, 태국 요리에요.

TV에서 태국 고추를 보고 무엇인가에 홀린 듯 막연하게 태국 요리를 배워 보겠다는 결심을 했고, 전역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태국 음식점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이력서를 인쇄해서 구겨질까봐 두 손으로 받들고 조심스럽게 갔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요리를 배우거나 제대로 일해 본 경력이 없으니 저를 못 받아준다고 거절하면, 무급으로라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마음이었습니다.

진심이 통했는지 운 좋게 광화문의 태국 음식점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셰프를 비롯해 주방에 근무하던 7명 중 4명이 태국인이었고 그들끼리는 태국어로 대화를 했죠. 저는 태국 언어를 할 줄 모르니, 처음엔 주방 잡일과 심부름 따위만 했어요.

너무 답답해서 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배우니 동료들과 짧게나마 단어로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고, 흥이 나서 더 열심히 언어를 배우니 문장으로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많은 발전이었죠. 열심히 노력하며 말문이 트이니 주방에서도 호감을 가지고 저를 바라보았고, 요리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태국 여행 중인 김남성 셰프
▲ 태국 여행 중인 김남성 셰프 (Pic: Kunsomchai)

Q. 태국 현지에도 자주 방문했나요?

2003년부터 태국 레스토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 태국에 가본 적은 없었습니다. 2년 정도 요리를 하고 나니 태국에 직접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습한 공기가 코로 들어왔고 드디어 ‘진짜 태국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공항부터 방콕 도심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가며 그간 쌓아 온 태국어 실력으로 택시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행복했습니다. 처음 왔는데도 익숙한 기분이었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요.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지만 2000년대 초에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태국 요리책을 구하거나 좋은 멘토를 찾는 것이 어려웠기에, 현지를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요리를 먹어보고 서점에 가서 책을 구하는 모든 것이 아주 중요했어요.

두 발로 태국 곳곳을 누비며 먹은 음식, 찍은 사진과 영상 모두가 제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첫 태국으로 첫 발을 디디고 15년동안 매 해 빠지지 않고 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쿤쏨차이 김남성 셰프의 다양한 요리
▲ 쿤쏨차이의 다양한 요리 (Pic: Kunsomchai)

Q. 태국을 직접 방문해 배운 것과 태국 요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태국 요리는 정말 맛있습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아무리 맛없는 음식점의 요리마저도 손님이 맛있게 완성할 수 있어요. 한국도 양념이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태국 음식만큼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를 사용하는 퀴진이 또 있을까요?

태국 음식점에 가면 테이블 위에 설탕과 고추, 피쉬소스, 건새우가루를 비롯해 기본적인 양념이 열 가지는 늘어서 있죠. 특별한 레스토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딜 가도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러 온 사람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또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음식에 양념을 추가하며 다양하게 조합해 먹을 수 있어요. 태국 음식의 문법을 조금만 이해해도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맛있게 변형이 가능한 것이죠.

저는 정식으로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요리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대신 태국을 다니며 음식을 직접 맛보고 주방을 관찰할 때, 식재료를 다루고 요리를 하는 모든 방식에 호기심을 가졌어요. “왜 저렇게 할까?”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가며 현장에서 배운 셈이죠.

센 불을 쓰는지, 약한 불을 쓰는지, 웍의 모양은 왜 저렇게 납작하거나 깊은지, 조리도구의 크기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또는 게으르게 일을 하는 것까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크고작은 행동 습성이 모두 중요한 요소가 되어 요리의 맛으로 녹아드는 셈입니다.

그렇게 배우고 터득한 노하우가 여러 가지 있어요. 저는 쌀국수를 요리할 때 고명으로 얹을 고기를 일부러 잘 안 드는 칼로 뜯어내듯이 거칠게 썰어 넣는데, 기계적으로 생각하면 날선 칼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태국에 가서 보니 고기를 찢듯이 잘라 넣는 방식에 독특한 식감의 비결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미묘한 요리 습관에서 나오는 차이를 제가 직접 알게 되는 것이 현지를 찾는 이유죠. 태국은 제게 고향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생에 태국과 관련이 있었던 걸까요? 그냥 편안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어요. 태국 사람들이 요리하듯, 저도 태국 음식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인 뒤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 내고 싶습니다.

Q. 태국 음식을 하는 셰프로써 도약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9년, 생어거스틴이라는 태국 음식점에 총주방장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소프트쉘 크랩 커리 메뉴가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받으며, 레스토랑이 프랜차이즈 형태로 아주 크게 확장하게 되었죠.

저는 전체 메뉴를 개발하고 책임지는 조리이사가 되었고, 단일 매장으로 시작했던 것이 9년간 전국에 50여개의 매장으로 확장했습니다. 사람들이 태국 음식은 잘 몰라도 뿌빳뽕 커리는 알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죠.

처음에는 한국에 소프트쉘 크랩 자체가 거의 수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메뉴가 소위 ‘대박’이 나며, 전국 소프트쉘 크랩 물량의 80%를 가져다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저희가 직접 식재료를 수입해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식재료가 한국 시장에 정착하는 데 기여를 한 셈이에요. 일도 다양해져서, 태국을 오갈 일도 많았습니다. 태국인을 현지에서 직접 채용해 한국으로 데리고 들어오기도 했고 식재료 등 수입업무도 많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쿤쏨차이의 다양한 태국요리

Q. 오너 셰프로 쿤쏨차이를 오픈한 이유는요?

사람들에게 태국 음식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시기에 나름대로 기여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제가 하고싶은 태국 음식을 선보일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진짜 태국 음식은 어떤 것일까 궁금할 때 찾아올 수 있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었죠.

널리 알려진 팟타이나 쏨땀 말고도 무궁무진한 음식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팟타이와 똠얌꿍, 뿌빳뽕 커리 정도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마싸만 커리와 똠얌 볶음밥도 정말 매력이 있거든요.

그 중에서도 인도 서남부의 커리와 태국 커리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마싸만 커리는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낯선 메뉴이지만, 한 번 맛보면 다시 이곳을 찾을만한 맛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쿤쏨차이’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음식에 비유하자면, 해외 사람들에게는 고추장으로 양념을 하는 비빔밥만 알려져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참기름이나 된장, 간장으로도 비빔밥을 해 먹거든요.

고추장 대신 된장을 넣는다고 한식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이 생겨나는 것이죠. 태국 음식도 마찬가지에요.

흔히 정통 조리법에는 특정 식재료에 특정 양념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색다른 조합으로 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어요. 한국 사람은 태국의 맛을 느끼고, 태국 사람들이 제 요리를 먹어도 익숙하면서도 창의적인 맛을 느끼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Q.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20년 전에 비하면 태국 음식이 한국에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저희 레스토랑은 한국 고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태국 요리인 팟타이도, 쏨땀도 메뉴에 넣지 않았어요. 태국 요리를 계속 그 메뉴에 한정하는 것이 싫었거든요.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메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다양한 태국 음식을 아직도 일부밖에 즐기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깝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에요.

메뉴 구성에 대한 설명 없이, 코스 요리처럼 셰프에게 모든 차림을 맡기는 메뉴도 있고, 팍붕 파이댕, 카오쏘이 뺏양, 똠쌥 등 다른 레스토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태국 각지의 요리를 메뉴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저희 레스토랑에 오시는 분들이 태국 음식을 보다 다채롭게 경험하기를 바라면서요.

저는 쿤쏨차이가 새로운 태국요리가 궁금할 때 언제든 찾아오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제 오더라도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단골 손님들 중, 제 마음대로 요리를 해 보라고 맡겨 주시는 분들이 계셔요.

식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요리까지 그냥 제가 해보고 싶은 요리를 믿어 주시는 것이죠. 그럼 시장에 가서 그 날의 재료를 고르고, 기존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해 보는데 저도 늘 이 과정이 흥분되고 즐겁습니다. 태국이라는 나라, 문화, 음식, 그리고 정겨움까지… 쿤쏨차이에서 이 모든 것을 느끼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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