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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연향상차림

하마연(환영연) 상차림
▲ 그림 1.

그림 1. 부사에게 베푼 1643년 3월 28일에 행한 하마연(환영연)과 1643년 4월 4일에 행한 상마연(환송연)의 연향상(1 인분 상차림)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김상보 (2006)『조선왕조 혼례연향 음식문화』

상마연(환송연) 상차림
▲ 그림 2.

그림 2. 하마연과 상마연에서의 다례과반, 미수행과, 진만두, 미수(1 인분 상차림)

<그림 1>은 하마연과 상마연 때 향례(響禮)에 맞추어 격 이 있게 차린 1조(組)의 연향상차림으로 1인분 상차림을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는 상사 포와 부사 양, 두 사람을 위한 연향이기 때문에 <그림 1>과 같이 차린 상은 하마연에서 2조, 상마연에서 2조로 합 4조가 된다.

<그림 2>는 익일연과 전연 때 차린 1조의 연향상차림으로 하마연과 상마연보다는 급수가 아래이지만 역시 향례에 맞추어 격이 있게 차린 1인분 상차림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2>와 같이 차린 상은 익일연에서 2조,전연에서 2조로 합 4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연향상 상차림
▲ 그림 3.

그림 3. 상마연과 하마연 연향상의 상화

<그림 3>은 하마연, 상마연, 익일연, 전연의 4회 연회 때 대통관 정명수에게 베푼 1조의 연향상차림으로 <그림 3>과 같이 차린 상은 4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전연 연향상 상차림 No1.
▲ 그림 4.

그림 4. 정사와 부사에게 베푼 1643년 3월 30일에 행한 익일연과, 1643년 4월 6일에 행한 전연 연향상(1 인분 상차림)

<그림 4>는 하마연, 상마연, 익일연, 전연의 4회 연회 때 참석했던 재신과 종재 3인에게 베푼 1조의 연향상으로 1인분 상차림을 나타낸 것이므로 <그림 4>와 같이 차린 상차림은 12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전연 연향상 상차림 No2.
▲ 그림 5.

그림 5. 정사와 부사에게 베푼 1643년 3월 30일에 행한 익일연고, 1643년 4월 6일에 행한 전연 연향상 (1 인분 상차림)

<그림 5>는 상사, 부사, 대통관에게 베푼 별다담 1조로 1인분 상차림이다. 별다담을 총 6번 차렸기 때문에 <그림 5>와 같이 차린 상차림은 18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연향상 상차림 No3.
▲ 그림 6.

그림 6. 익일연과 전연 연향상의 상화

<그림 6>은 1등두목 4인에게 베푼 편전연회, 하마연, 상마연, 익일연, 전연에서 베푼 1조의 연향상차림으로 1인분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6>과 같이 차린 상차림은 20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연향상 상차림 No4.
▲ 그림 7.

그림 7. 대통관 1인에게 베푼 4번 설연 연향상

<그림 7>은 3등두목 5인에게 편전연회, 하마연, 상마연, 익일연, 전연에서 베푼 1조의 연향상차림으로 1인분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7>과 같이 차린 상차림은 25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연향상 상차림 No5.
▲ 그림 8.

그림 8. 하마연, 상마연, 익일연, 전연때 재신과 종재 3인에게 베푼 연상(1 인분 상차림)

<그림 8>은 두목대객(對客)9) 2원에게 편전연회, 하마연, 상마연, 익일연, 전연에서 베푼 1조의 연향상차림으로 1인분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8>과 같이 차린 상차림은 10조가 된다.

자료 :『영접도감연향색의궤』(1643)

4월 6일 청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청 태종은 이미 풍증(風症)이 있었다. 해서 조선정부에 청 태종의 치료를 위하여 죽력(竹瀝)10)을 보내줄 것과 명의(名醫)를 요구하므로 임금이 명하여 침의(鍼醫)인 유달(柳達)과 약의(藥醫)인 박군(朴郡) 등을 같이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 태종은 8월 9일 사망하였다. 9월 3일 칙사 박씨(博氏) 2원과 일등두목 이역(李譯),이등두목 2인,삼등두목 3인으로 구성된 청사들이 고애사(告哀使)11)로서 경성에 입경하였다.12) 조선정부의 백관들은 9월 2일 명정전(明政殿) 뜰에 모여 거애(擧哀)13)하였다.

4품 이상은 포사모(布紗帽), 마대(麻帶), 포단령(布團領) 차림이었고 5품 이하는 오사모(鳥紗帽), 오각대(鳥角帶), 백단령(白團領) 차림이었다.14) 9월 6일에는 백관이 명정전 뜰에서 성복례(成服禮)15)를 행하였다. 청사인 두 박씨(博氏)가 남별궁으로부터 와서 그 행사를 보았다. 임금이 최복(衰服)16)차림으로 편전에서 박씨들을 접견하였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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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 전통한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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