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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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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평양온반, 평양랭면, 어북쟁반

♣ 평양온반의 유래

오래전부터 평양온반은 우리 나라의 이름난 민족음식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평양지방사람들이 언제부터 온반을 만들어 먹었는지 정확히 알수 없으나 그것이 생겨나게 된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먼 옛날 평양관가에서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불쌍한 젊은이들인 형달이라는 총각과 의경이라는 처녀가 심부름군으로 일하고있었다. 서로 의지하고 동정하면서 의좋게 살아오던 그들사이에는 세월과 더불어 사랑의 감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해 추운 겨울날 형달은 뜻밖에도 관가로부터 억울한 루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였다. 의경은 옷한벌 변변히 걸치지 못한채 옥에 끌려가 모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있을 형달이가 너무 불쌍해 울고 또 울었다. 혈혈단신의 의경에게 있어서 형달은 모든것을 대신해주는 마음의 기둥이였다.

의경이가 며칠째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있던 어느날 밤이였다. 부엌에서 일하는 한 어머니가 남몰래 흰쌀밥 한그릇과 지짐 몇짝을 주면서 먹고 기운을 내야 형달이가 옥에서 풀려나올 때 건강한 몸으로 맞이할수 있다고 달래였다.

자기를 위해주는 그 어머니의 마음은 고마왔으나 어쩌다 색다른 음식을 받아든 의경의 마음은 옥에 갇힌 형달에게로 줄달음쳤다. 눈물을 닦고 일어난 의경은 밥우에 지짐을 놓고 거기에 설설 끓는 국물을 부은 다음 밥그릇의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는 형달이가 갇힌 옥으로 달려갔다. 바람조차 가리우지 못하는 옥에서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지쳐있던 형달은 그것을 받자마자 정신없이 먹었다. 그러자 꽁꽁 얼었던 몸은 인차 훈훈해지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에야 자기의 성급함을 느낀 형달은 미안함과 함께 감사의 말을 하며 방금 먹은것이 무슨 음식이냐고 물었다.

의경이 역시 형달이 그리운 마음에 두서없이 준비해온 음식이라 선뜻 대답을 못하고있다가 얼뜻 떠오르는 생각에 《온반(더운 밥이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형달은 의경의 손을 꼭 잡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온반이라고 하면서 잔치할 때 온반을 만들어 먹자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형달은 옥에서 나오고 마침내 의경이와 결혼잔치를 하게 되였다. 부모없이 자란 자기들을 동정하여 잔치상도 차려주며 축하해주는 고마운 이웃들에게 형달이와 의경이는 옥에서 한 약속대로 온반을 만들어 대접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음식맛이 참 별맛이라고 하면서 여간만 좋아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평양지방사람들은 결혼잔치를 할 때면 처녀와 총각이 형달이와 의경이처럼 착한 마음씨와 참된 의리를 지니고 화목하게 살라고 의례히 온반을 만들군 하였다. 그것이 점차 이름난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전국각지에 퍼지게 되였다.

♣ 조선국수의 대명사 - 평양랭면

평양랭면은 예로부터 평양사람들이 자랑하는 음식으로서 여러 지방들에서 만든 랭면가운데서 제일로 손꼽히였다.《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를 모두 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것을 랭면이라 하는데 관서(평안도)지방에서는 국수가 제일 좋다.》고 기록되여 있으며 《해동죽지》에서도 평양랭면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사실 평양랭면은 국수감으로부터 국수국물, 꾸미와 고명, 담는 그릇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소홀히 보지 못할 독특한 맛과 꾸밈새를 갖추고있다. 그래서 《랭면》이라는 말그대로 찬 음식이지만 찬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겨울철에도 평양랭면만은 사양하지 않고먹었다.

대사때에도 평양랭면은 손님접대용으로 빠져서는 안될 음식으로 간주되여왔다. 오늘 평양랭면은 우리 나라 지경을 벗어 나 세계에 널리 알려져 조선국수의 대명사로 조선민족음식의 대표작의 하나로 세상사람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있다.

평양랭면은 순메밀로 만들어야 하며 양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양념을 하면 마늘과 파냄새만 나면서 메밀국수의 고유한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먹을 때 식초를 잘 쳐야 한다. 평양랭면은 식초를 고기국물에 치지 말고 국수사리에 쳐서 고기국물에 말아먹어야 제맛을 느낄수 있다.

♣ 평양사람들의 호방한 성격을 담은 어북쟁반

어북쟁반은 지난날 랭면과 함께 평양특유의 료리로 전해져 왔다. 평양의 랭면집들에서는 랭면과 함께 어북쟁반을 만들어 팔았으므로 사람들은 어북쟁반을 먹고 싶으면 의례히 랭면집에 찾아 들어갔다. 구절판, 신선로, 전골과 같이 쟁반도 그릇의 이름이자 료리의 이름으로 전해지고있다.

음식으로서 쟁반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랭면쟁반국수를 생각하지만 어북쟁반은 국수가 아니라 고기료리이다. 우리 나라 중세기의 전문료리책에 이 료리가 소개되여있지 않은것을 보면 근대에 생겨난것으로 인정된다.

어북쟁반은 질기지 않은 소의 어북살을 삶아 얇게 썰어 간장, 고추가루, 마늘, 참기름으로 연하게 양념을 하고 직경 50~60Cm정도 되는 큰 놋쟁반에 담아 닭알, 버섯, 배, 파, 잣 등을 얹은 다음 초장종지를 놓아 고기를 집어서 찍어 먹게 하였는데 소고기에 간을 맞춘 따끈한 소고기국물을 부은 료리이다.

쟁반가운데에 닭고기를 섞기도 하였다. 어북쟁반은 한두사람이 아니라 3~4명이 이야기를 하면서 소주를 곁들여 담담하게 먹는데 적합한 료리였다. 이 료리식사에서 이채를 띠는것은 술안주로 고기를 집어먹으면서 국물을 마시고싶을 때에는 그릇에 입을 대고 마시는것이였다.

이때 쟁반이 커서 자기 혼자 그릇을 기울여 마시기 불편하므로 마주 앉은 사람이 그릇을 기울여 주어야 하였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웃으며 유쾌하게 국물까지도 마신다는데 어북쟁반의 진미가 있었다고 한다.

이 료리식사에서 재미나는것은 술과 고기를 다 먹고 국수생각이 날 때 랭면사리를 쟁반에 놓고 국물을 덧부어 가면서 말아먹는것이였다. 국수를 먹을 때 때로는 국수사리의 끝과 끝이 이쪽 사람의 입과 저쪽 사람의 입에 련결되여 그가운데를 웃으며 끊는 일이 벌어지군 했다고 한다.

따끈한 국수를 먹고싶을 때에는 숯불우에 쟁반을 얹어놓고 먹었다. 사람에 따라 작은 보시기를 따로 마련하여 고기나 국물, 국수를 떠다 먹기도 하였다.

직경 50~60Cm나 되는 큰 놋쟁반, 여럿이 허물없이 둘러 앉아 먹으면서 화목을 도모하는 다정한 분위기, 료리에 어울리는 독한 소주, 술을 마신 뒤 랭면으로 이어지는 어북쟁반은 소박하고 호방하며 활달하고 랑만적인 평양사람들의 성품과 기호가 낳은 특이한 료리라고 할수 있다.

평양어북쟁반은 조선의 자랑할만한 료리로 되고있으며 이 료리를 먹어본 외국인들은 일생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료리로 평가하고있다. 평양사람들은 이 료리를 《어북(물고기 어, 배 복)쟁반》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료리에 왜 《어북》이라는 말을 붙였는지 제대로 설명한것이 없다.

조선말사전들에서는 《어북》에 대하여 물고기배 또는 장딴지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료리는 물고기로 만든것이 아니므로 분명히 초기에 소장딴지따위의 고기로 만들었다고 하여 《어북쟁반》이라고 불리우게 된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는 지금 소고기의 부위명칭에 어북살이 있고 어북고기로 만든 쟁반료리이므로 《어북쟁반》이라고 부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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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조선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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