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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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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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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토장국, 록두지짐.묵채, 화전, 강냉이, 구황식품

♣ 토장국

가정주부들이 집에서 담근 장을 가지고 끓인 토장국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가장 보편적인 겨울철 일상음식의 하나로 되고있다. 우리 인민들이 토장국을 먹어온 력사는 자료에 보이는 때로부터 계산하여도 1500년이상이나 된다.

겨울철에 소뼈를 고은 국물에 토장을 풀어두고 배추, 콩나물, 무우 등을 넣고 끓인 남새토장국은 향토적인 맛이 짙은 국으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지방에 따라 덜 말린 청어나 멸치를 넣고 끓인 토장국, 쌀씻은 물에다 토장을 두고 기름기가 있는 고기나 남새, 향신료같은것을 넣고 끓인 토장국도 있었다.

우리 나라 북부지방과 산간지역들에서는 콩가루를 넣어서 토장국을 끓이기도 하였다. 날콩가루를 넣고 토장국을 끓이면 그 맛이 구수할뿐아니라 단백질도 충분히 섭취할수 있었다. 날콩가루를 쓰는것은 닦은 콩가루가 더운 국물에 잘 풀리지 않기때문이다.

김장철에 말려두었던 무우시래기나 감자, 기름기가 있는 고기, 콩나물을 섞어 끓인 토장국은 밥반찬은 물론 술안주로도 널리 리용되였다. 토장국에 콩나물만 넣고 끓인 국도 소박하기는 하지만 인기가 있었다. 토장국은 술로 시달린 속과 흐려진 기분을 풀어주는 해장국(해정국) 으로도 많이 쓰이였다.

조선사람에게는 토장국이 그저그만이다. 아무리 좋은 고기국이라도 몇끼만 연거퍼 먹으면 물리여 못먹지만 토장국은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는것은 독특한 그 맛이 조선사람의 피와 살에 배여있기때문이다.

♣ 조선의 특산음식 록두지짐

지짐은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족음식의 하나이다. 우리 인민들은 오래전부터 지짐을 즐겨 지져 먹어왔다. 밀지짐, 찹쌀지짐, 팥지짐, 강냉이지짐, 감자지짐, 록두지짐 그리고 낟알음식감들과 다른 부음식감들을 배합하여 지진 다양한 지짐들은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을 이채롭게 장식하군 하였다.

우리 나라의 여러가지 지짐가운데서 제일 이름이 높은것은 록두를 물망에 갈거나 록두가루를 물에 개서 기름에 지져낸 록두지짐이였다. 록두가 세나라시기이전부터 재배되였고 록두지짐가공법이 단순한것으로 보아 우리 인민들이 이 음식을 분명히 고대나 세나라시기에도 만들어 먹었을것으로 짐작되지만 기록상으로는 1670년대에 씌여진 《음식지미방》에 처음 나온다.

당시의 록두지짐은 록두반죽물을 지짐판에 조금 떠놓고 우에 삶은 밤을 으깨여 꿀에 버무린것을 놓은 다음 다시 록두 간것을 씌워 지지고 그우에 잣과 대추를 박은것이였다. 그런데 18~19세기이후부터 지짐은 소를 넣지 않고 그냥 지진것만을 가리키게 되였고 소를 넣고 지진 지짐은 평안도, 함경도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서 《부꾸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지난날 결혼식이나 환갑과 같은 경사로울 때의 큰상은 물론 제상에도 록두지짐을 놓는것이 풍습으로 되여있었는데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높이 괼 때 밑받침용으로 널리 쓰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록두지짐을 대사뿐아니라 평상시에도 특식으로 지져 먹군 하였다.

콩류는 북쪽지방에서 먼저 재배되여 남쪽지방에 보급되였으므로 록두지짐도 북쪽지방주민들이 먼저 만들어 발전시킨 음식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록두지짐은 20세기이후 세계적으로 김치, 불고기와 함께 조선의 특산음식으로 평가되고있다.

♣ 각이한 이름으로 불리운 록두묵채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늦은 봄이면 시원한 록두묵채를 만들어 즐겨먹군 하였다. 록두묵채의 기본음식감인 록두묵은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묵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던것이였다.

황해도사람들은 여름철에 꼭 록두묵을 해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묵을 만들 때 나오는 물(묵물)을 미음대용으로 허약한 사람들과 위병환자들을 위한 식사에 많이 리용하였다. 강원도지방에서는 여러가지 낟알로 묵을 만들어먹었는데 그중에서도 록두묵이 특별히 맛이 좋아 명절이나 반가운 손님이 왔을 때 별식으로 만들어먹었다.

우리 인민들은 록두묵에 양념장을 쳐서 그대로 먹기도 하였지만 묵과 여러가지 가공한 보조음식감들을 섞어 만든 음식을 더 좋아하였으며 이것을 록두묵채라고 하면서 봄철에 많이 만들어먹었다. 록두묵채는 탕평채, 청포채, 묵초나물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탕평책을 론의하던 장소에 올랐던 음식이라는데로부터 록두묵채는 탕평채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록두묵채를 청포채라고 하게 된것은 묵을 한자로 《포》라고 하고 노란 록두로 만든 묵을 《황포》, 푸른 록두로 만든것을 《청포》라고 불렀는데 록두묵채는 주로 푸른 록두묵을 가지고 만들었기때문이였다.

♣ 삼질날의 절식이였던 화전

우리 인민들은 봄의 향취를 한껏 맛보기 위해 음력 3월 3일을 명절로 정하고 이날에 한바탕 논 다음 한해농사에 달라붙군 하였다. 이날이 바로 삼질날이였다. 삼질은 력사기록에 《상사》, 《답청절(봄철 풀을 밟아보는 명절이라는 뜻)》로 소개되여있으며 민간에서는 《삼질날》이라고 하였다.

3월삼질에 우리 인민들이 즐긴것은 화전놀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길수로 여겨오는 《석 삼》이 중복되는 날인 삼질날에 식구들끼리 혹은 가까운 이웃이나 부녀자들끼리 들놀이를 조직하고 화전과 같은 특색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먹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냈는데 이날의 들놀이를 꽃을 보며 즐기는 놀이라고 하여 《꽃놀이》, 《화류놀이》또는 화전을 지져먹는 놀이라고 하여 《화전놀이》라고 하였다.

화전놀이는 우리 조상들이 세나라시기이전부터 즐긴 놀이였다. 꽃구경도 하고 화전도 지져먹으며 노래도 부르고 시도 짓던 이 화전놀이는 녀성들이 한데 어울려 음식재능을 보여주는 마당이기도 하였다. 화전은 옛날 우리 인민들이 주요한 봄명절로 쇠여온 삼질날의 절식이자 봄철의 특식이였다.

이날에 우리 인민들이 주로 지져먹은 화전은 진달래화전이였다. 진달래화전은 보기에도 좋을뿐아니라 그 맛 또한 향기로와 잔치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큰상에 놓기도 하였다.

♣ 자연의 소박한 정서를 안겨주는 풋강냉이음식들

바쁜 봄철농번기가 어느덧 지나가고 곡식들이 눈에 띄게 쭉쭉 자라는 무더운 여름이 오면 바야흐로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립추를 전후로 하여 터밭에 심은 강냉이에는 팔뚝같은 이삭이 달린다. 농가들에서는 이 이삭을 따서 그대로 삶아먹기도 하고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먹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풋강냉이를 삶아먹기 좋아하였다. 삶은 풋강냉이는 그 맛이 달콤하고 만문하여 먹기에 좋을뿐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박하고 구수한 정서를 함뿍 안겨준다. 평안도지방에서는 삶은 풋강냉이에 건뎅이젓을 찍어먹는것을 좋아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또한 풋강냉이로 묵, 올챙이국수, 지짐 등의 음식들도 만들어 먹었다. 여기서 올챙이국수란 되직하게 쑨 풋강냉이묵을 구멍 뚫린 바가지에 넣고 찬물속에 뚝뚝 떨어지게 하여 만든 국수로서 국수발모양이 올챙이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올챙이국수는 평안도지방의 별식이였다. 이 음식은 18세기경부터 만들어 먹어온것으로 보아진다.

♣ 구황식품

지난날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할 때 낟알대용으로 먹는 야생식물음식감을 구황식품이라고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큰물이나 가물 등 자연재해로 인한 흉년을 수없이 겪어오는 과정에 식량을 절약하거나 대신할수 있는 여러가지 식물의 연한 싹과 잎, 꽃, 뿌리, 열매, 껍질 등을 찾아내여 가공해 먹는것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경험을 체득하게 되였다.

16세기의 책인 《구황촬요》, 18세기말~19세기초의 책인 《중보산림경제》를 비롯한 여러 력사책들과 민속자료들에는 수많은 구황식료품들과 그 가공방법이 지적되여있다.

그 대표적인것으로는 소나무잎, 소나무껍질, 느릅나무껍질, 칡뿌리, 갈뿌리, 메밀꽃, 콩잎, 콩깍지, 토란, 마, 도토리, 삽주뿌리, 메뿌리, 둥굴레, 소리쟁이, 흰솔풍령, 나리뿌리(백합), 마름, 고욤, 개암, 들깨, 쑥, 황정, 대추, 은행, 잣, 호두, 곶감, 호마, 느티나무잎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구황식품가운데서 쉽게 얻을수 있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고있는것 그리고 알려졌으나 가공방법을 잘 모르고있다고 보아지는 몇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소나무

소나무의 잎, 껍질, 송진, 솔방울 등이 식용으로 쓰이였다. 력사책들에는 솔잎을 으뜸가는 구황식품으로 꼽고 있는데 느릅나무껍질과 섞어 먹으면 변비가 없어진다고 하였다. 솔잎으로는 죽과 경단을 만들었다.

솔잎죽은 솔잎가루, 쌀가루, 느릅나무껍질즙(3 : 1 : 0.1)을 섞어서 쑤었는데 찧은 솔잎을 묽게 쑨 낟알가루죽에 풀어서 먹었다. 솔잎죽은 주식을 대용할뿐아니라 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는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솔잎경단은 솔잎을 찐 다음 말려서 가루를 내여 흰쌀이나 보리, 밀, 콩가루 등과 섞어서 만들었는데 쪄서 먹거나 삶아 먹었다. 소나무의 속껍질은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재물에 담가 진을 빼고 절구에 찧은 다음 쌀이나 콩가루와 섞어 죽을 쑤어 먹거나 낟알가루를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

소나무꽃가루에 꿀이나 조청을 넣어 과자를 만들어 먹거나 덜 여문 솔방울을 따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여 꿀에 버무려서 혹은 물에 타서 마셨다. 력사책에는 투명한 송진을 뽕나무재물에 우려내여 찬물에 넣고 응고시킨것을 끓여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여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 도라지

도라지를 푹 삶아 보자기에 싸서 물에 담그어 주무르거나 눌러 쓴맛을 뺀 다음 밥에 섞거나 낟알가루에 섞어 쪄서 먹었다. 말린 다음 가루를 내여 밥에 섞어 먹기도 하였다. 또한 도라지를 칼등으로 두드려 장을 발라 구워먹거나 파, 고기 등과 같이 꼬챙이에 꿰서 지지거나 튀겨 먹기도 하였다.

□ 칡뿌리

껍질을 벗겨 절구에 찧거나 돌우에 놓고 두드린 다음 물에 담그어 앙금을 앉혔다가 그 앙금으로 국수나 떡, 다식을 만들기도 하고 쌀과 섞어 죽을 쑤기도 하였다. 칡의 어린 잎은 나물을 만들어 밥에 얹어 먹고 다 자란 잎사귀는 그늘에서 말렸다가 가공하여 먹었다.

□ 도토리

구황식품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리조실록》에도 흉년에 도토리만한것이 없다고 기록되여있고 정다산도 그 효능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농마를 내여 밥에 섞어 먹거나 묵을 만들어 주식으로 리용하였다.

□ 갈뿌리

칡뿌리와 같은 방법으로 가공하여 록두가루나 메밀가루에 섞어 국수를 누르거나 밥에 섞어 먹었다.

□ 나리

봄과 가을에 뿌리를 캐서 굽거나 쪄서 먹었고 쌀, 보리 등에 섞어 밥을 짓거나 죽을 쑤어 먹기도 하였다. 어린 잎은 나물로 먹고 다 자란 잎은 가루를 만들어 지져 먹었다.

□ 만삼

삶아서 가루를 내여 밥에 섞어 먹었다.

□ 쑥

데쳐서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다음 쌀과 섞어서 밥을 짓거나 죽을 쑤어 먹었으며 국을 끓여먹기도 하였다.

□ 느릅나무

연한 잎은 쪄서 떡에 넣거나 국을 끓여먹었으며 속껍질에서 짜낸 즙은 솔잎경단을 만드는데 쓰거나 변비치료약으로 썼다. 속껍질을 잘게 썰어 말리웠다가 가루를 내여 지짐을 부치기도 하고 쌀, 보리 등에 섞어 죽을 쑤거나 경단을 만들기도 하였다.

□ 개암

말리워 먹기도 하고 삶거나 굽거나 쪄서 그리고 떡이나 밥에 넣어 먹기도 하였다.

□ 구기자

연한 잎은 나물로 먹거나 밥에 섞어 먹었다. 잎과 열매는 말려두었다가 필요한 때 먹기도 하였다.

□ 뽕나무

연한 잎은 무쳐 먹었으며 크게 자란 잎은 말려서 가루를 내여 두었다가 낟알과 섞어서 먹었다. 뽕나무속껍질을 찧어서 물에 담그면 앙금이 생기는데 이 앙금을 말려서 밥이나 죽, 떡을 만들어 먹었다.

□ 더덕

새순은 나물을 하고 뿌리는 날것으로도 먹고 굽거나 삶아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여 밥에 섞어 먹기도 하였다.

□ 둥굴레

봄과 가을에 뿌리를 캐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여 밥이나 콩가루와 섞어 먹었다. 약한 불에 푹 고아서도 먹었다.

□ 질경이

잎을 따서 한시간정도 삶아 말린 다음 낟알과 함께 죽을 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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