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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7.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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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실백자 올린 전복쌈: 도전복(蹈全腹) / 전복쌈

도전복은 1750년 발간된『수문사설』에 전해지는 요리이다. 이 요리법은 낙등의 조상국이 전한 것이다. 지금의 경상도 상주인 낙등에 사는 인물이다. 상주는 조선 시대에 영남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진상품이 모이는 지역이었다. 그는 반드시 울산에서 만들어진 반건복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① 울산산 반건복을 자른다.

② 그 배에 곱게 빻은 잣가루를 채워 넣는다.

③ 이를 베보자기로 싸서 밟는다.(잣이 스며들도록)

④ 베보자기를 벗겨서 손가락 크기의 편으로 씰어 먹는다.78)

도전복(蹈)이라는 이름처럼 고명으로 들어간 잣가루가 잘 스며 들기 위해 누르는 과정이 필요했다. 고명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시각적으로 식욕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잣의 고소한 풍미가 전복과 어우러진 맛이었을 것이다.『수문사설』에 실린 도전복은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수문사설』도전복(蹈)
▲ 『수문사설』도전복(蹈)

한 눈에 봐도 정갈하면서 식욕을 당긴다. 쫄깃한 전복과 고소한 잣의 맛이 잘 어우러진 맛일 것이다. 도전복은 전복과 잣을 활용했다는 점 에서 전복쌈과 유사하다. 전복쌈은 1800년 말 경에 발간된『시의전서』에 기록돼 있다. 작은 송편 혹은 전복만두라고도 한다. 큰전복은 얇게 편으로 뜨면 만두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① 마른 전복을 물에 불려서 베보자기에 싸서 물기를 없앤다.

②①을 얇게 저며 잣을 싼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도 전복쌈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전복 중에 으뜸은 울산에서 가져온 것’을 써야 한다고 했다. 말린 전복을 젖은 헝겊에 싸눅눅해지면, 이를 종이처럼 얇게 저며 만두피로 사용했다. 만두의 속은 당연히 ‘실백자’(實栢子), 즉 껍데기를 벗긴 알맹이 잣이었다.

잣을 몇 알놓고 전복을 반으로 접어 가장자리를 꼭꼭 눌러 완성했다. 전복쌈은 1937년 발표된 ‘울산큰애기’의 한 구절로도 남아있다. 이 노래는 1937년 빅타 레코드사에서 음반으로 제작됐다. 울산 출신 가수인 고복수의 아내이자 가수였던 황금심이 불러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울산 큰애기

작사 고마부

직곡 이면상

동해나 울산에 잣나무 그늘

경개도 좋지만 인심도 좋구요.

큰애기 마음은 열두 폭 치마

실백자 얹어서 전복싹일세

에헤라 울산은 좋기도 하지

잣나무가 그늘을 만들어내고, 그 잣을 고명으로 올린 전복쌈이 한 구절의 가사로 남아있다.〈울산 큰애기〉는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울산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노래의 꾸준한 인기와 달리 전복쌈은 이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전복쌈을 해 먹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 었던 탓일 것이다. 그 이후는 공업단지 지정을 계기로 전복 생산이 예전만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잊힌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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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부산광역시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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