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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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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9. 예술 속의 부산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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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부산은 고지도의 한 가운 데 보이듯 둥글게 성곽을 쌓고 있는 ‘동래부’ 지역으로, 이 안에서만 일반 백성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왜구들이 시시때때로 출몰해서 동래부 밖은 항시 전시태세였고, 자연스럽게 강과 바다를 중심으로 취락을 형성하며 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왜구를 막기 위해 수영강 쪽 오른편에 좌수영, 지금의 부산항지역인 부산진, 낙동강 하구 끝에 다대진 등의 수군진영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리가 놓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 영도가 과거에는 절영도(絶影島)로 그림자가 끊겨 따라 오지 못할 정도라고 비유되는 빠른 말들, 천리마들을 키우는 곳으로 유명했었고, 그 절영도 맞은편에 일본과 교역을 위한 왜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지도를 통해 본 옛 부산은 좌(左)로는 낙동강이, 우(右)로는 수영강이 흐르고 바다에 인접하고 있어 사람들이 취락하기에 좋은 곳이었음을 쉽게 알 수있다.

그래서 선사시대에는 산에서 수렵을 하고 강과 해안에서 어패류를 채취해 먹었으나, 국가체제가 정비되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변방을 막기 위한 군사지역이 되어 사람들이 정착해 살기에 어려운 곳이 되고 말았다.

현재 부산광역시는 과거 조선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크게 확장되고 변모되었다. 동쪽으로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 서쪽으로 강서구 천가동 말박도, 남쪽으로 사하구 다대동 남형제도, 북쪽으로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를 경계로 바다를 남쪽에 두고 경상남도와 인접한 큰 거대도시가 된 것이다.

옛 부산과 비교하면 산맥과 강, 바다만 있던 조그만 촌락이자 국가의 군사적 변방지역이 우리나라 최고의 항구도시이자 관광도시로 화려하게 변화된 것이다. 그러나 부산이 과거에 볼품없는 변방지역으로만 평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옛 부산은 산수가 아름다워 신라시대의 학자 최치원이 해운대의 풍경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의 초읍에 있는 성지곡 유원지 자리는 신라시대 유명한 지관이었던 성지(聖知)가 곳곳의 명산을 돌다 지금의 터가 너무나 좋아 그곳에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고, 그곳을 ‘성지곡(聖知谷)’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영도에 있는 태종대는 신라시대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전국을 순회하던 중 빼어난 해안 절경을 즐기며 활을 쏘던 곳으로 태종의 이름을 따서 태종대라고 부르게 했다.

이와 같이 자연환경이 좋다고 역사 속에서도 많이 회자되었던 부산이지만, 평야지대가 별로 없고 농경지가 협소한 까닭에 과거 농경사회 중심의 문화 속에서 중요한 곳으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앞서 고지도를 통해 설명 했듯이 군사경계지역이기도 했기에, 부산은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꾸리기 힘든 장소였다. 지금에 우리가 보기에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풍부한 바다자원을 지녔음에도 조선시대의 부산 인근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교류 할 수 없었던 척박한 땅이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박해 보이는 부산의 산, 들, 강, 바다가 지금의 거대한 도시 부산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을까?

이것을 근대화 과정의 경제성장의 결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산의 변화과정을 너무나 단순화 시키는 것으로, 경제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산의 역사를 담기 위해 우리 부산의 음식 이야기를 펼쳐 보게 되었다.

우리가 먹고 즐길 수 있는 부산 음식들의 이야기 안에 우리의 산, 들, 강, 바다가 어떻게 녹아들며 변화되어 왔을까? 그 시작으로 산과 들, 강과 바다로 흐르는 부산의 음식 이야기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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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부산광역시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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