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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7. 부산 산마을의 맛과 멋, 보양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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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천혜의 환경에서 자란 흑염소의 우수한 맛 산성마을 흑염소불고기

♣ 동래파전의 유래

유래에 대한 문헌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례연구에 의하면 조선조에서 삼짇날 임금님께 진상한 음식(동래할매파전 <옥호> 음식점 주인의 구술)인 상류층 음식으로, 벚꽃 피기전의 초봄의 계절음식 및 재실음식(이씨 및 왕씨 부부, 추씨 등의 민간구술)으로 이루어졌고 이로써 부산 향토음식임이 입증되었다.

* 참고 : 김상애, 신은수, 「부산 향토음식 동래파전의 조리표준화 및 영양분석」, 「한국영양학회」 36집, 2007

동래파전
▲ 동래파전 : 부산 동래 향토음식점에서 전통방식에 따라 만든 동래파전의 모습,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는 것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 동래파전, 부산의 옛 모습을 담아

부산의 오랜 전통문화는 유일하게 촌락을 구성할 수 있었던 동래와 그 인근에서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다. 양반들이 췄던 동래학춤, 흥겹게 민중들이 즐겼던 동래들놀음(동래야류 東萊野遊), 수영들놀음, 동래줄다리기, 동래지신밟기 등이 유명 한 전통 문화이며, 전통 음식으로는 동래파전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을 부, 목, 군, 현의 순으로 크기를 나누어 관리했다. 동래부는 원래 가장 작은 촌락을 이르던 동래현으로 고려시대에 백제가 다스렸던 지역을 얻게 된 것이라 처음에는 하찮은 변방으로만 취급해 오던 곳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일본의 도발을 막기 위한 최전방 기지의 역할에다, 일본과의 무역을 위한 해외 교역 활로의 중요성을 인식해 현에 불과했던 마을을 부로 승격하게 된 것이다.강대민, 「부산역사의 산책」, 경성대학교출판부, 1997

중요한 군사지역과 무역교역로로 부각된 후 동래부가 지역의 행정을 자치적으로 담당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처음으로 지역의 고유한 음식을 임금에게까지 직접 진상하게 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동래파전이 탄생하게 된 유래의 전부다.

이전에는 조그만 변방인 까닭에 전통 음식이 남아 있더라도 그 역사나 유래가 경남지역에 속한 음식문화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동래부에서 특색 있는 음식으로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가 되었다는 동래파전의 유래를 보면, 옛 부산이 중요한 지역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특별한 지역의 먹을거리로 동래파전을 널리 알리게 되었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가 있다.

♣ 임금도 반할만 한 최고의 전(煎)인 까닭은?

동래파전은 변방으로 취급받던 부산의 위상이 높아지고, 부산의 중요성과 함께 부각된 음식이라 그런지 다른 전처럼 투박하고 향토적인 요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서양의 피자나 일본의 오꼬노미야끼를 닮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국적이고 화려한 느낌이다.

여러 종류의 전

예를 들어 경기도의 호박전, 경북지역의 배추전, 서해안지방의 서대전 등은 지역의 향토에서 나는 단순하고 소박한 식재료로 전을 부쳐낼 뿐이다. 이러한 각 지역의 전들과 달리 동래파전은 풍성한 재료와 화려한 맛에서 그 어떤 전들과도 비교할 바가 없을 정도다.

동래파전은 멥쌀, 찹쌀가루로 반죽물을 만들어 파, 미나리, 대합, 홍합, 새우, 굴, 조갯살, 미나리, 소고기를 얹어 부쳐낸 것이다. 요리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래파전은 식물유 기름을 번철에 둘러 불에 가열한 후 다듬어 낸 파와 미나리를 다른 전들처럼 반죽해 넣지 않고 그대로 먼저 올려낸다.

그 위에 소고기와 해산물을 얹은 다음, 또 한 번 파와 미나리를 얹은 뒤에야 따로 만든 반죽물을 붓고 서서히 익혀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재료들이 익기를 기다려 계란을 풀어 얹고 뚜껑을 덮어 한 번 더 익혀내는 복잡한 요리과정을 거친다.

밀가루와 재료를 미리 반죽해 부치는 다른 전들에 비해 조리방법만 살펴보아도 그 차이가 너무나 확연하다. 동래파전은 다른 전들보다 해산물이 풍부하게 들어가는 까닭에 바다의 재료가 주는 맛을 잘 살리기 위해서 간장이 아닌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동래파전은 쌀가루에 비해 더 찰진 찹쌀가루를 이용하기 때문에 쫄깃하면서도 질척한 맛이 있다. 이러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도 바삭한 튀김 같은 음식에 어울리는 간장보다는 초고추장이 더 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

예로부터 번철에 넉넉하게 기름을 둘러 부치는 조리법은 민가에서 자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거나, 부잣집에 큰 잔치가 있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이어야만 전유어*를 맛볼 수 있었다.

특히 동래파전은 파와 미나리의 푸른색, 해산물의 흰색, 쇠고기의 붉은색과 계란의 황색이 어우러져 색감이 화려하고 영양소까지 고루 갖추고 있어 맛과 영양도 좋지만 음식자체가 귀하고 화려한 까닭에 눈으로만 보아도 잔치의 흥을 절로 돋게 만드는 음식이 되었다.

삼짇날인 봄철에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동래파전은 초봄에 가장 먼저 자라나 여리고 향이 좋은 조선의 쪽파(실파)만을 사용한 것으로 파라는 흔한 식재료 하나도 최상품이어야 했다.김상애, 신은수, 「부산 향토음식 동래파전의 조리표준화 및 영양분석」, 「한국영양학회」 36집, 2007

여기에 밀가루가 아닌 비싼 쌀가루, 인근의 바다와 강에서 얻은 조갯살, 우리나라 최고의 육고기라 할 수 있는 소고기, 싱싱하고 아삭한 식감으로 입맛을 자극하는 채소인 미나리 등을 얹어 낸 환상적인 동래파전의 맛을 어느 전(煎)요리가 따라올 수 있을까?

풍성한 식재료 외에도 반죽물 만드는 방법에까지 특별한 비법이 들어가 있는데, 쌀가루 반죽에 특별한 맛국물을 더해 반죽하는 것이다. 밴댕이(디포리)**와 다시마 등을 우려낸 것인데, 다른 전에 비해 반죽 하나에도 바다와 육지의 맛이 조화되도록 정성을 다했다.

이렇듯 우리가 흔히 알고 먹던 전과 다르게 세심한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동래파전의 요리비법은 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맛으로 보나 형태로 보나 정말 손댈 것 없이 완벽한 동래파전. 부산의 모든 식재료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담은 것도 훌륭하지만, 요리의 마지막에 솥뚜껑으로 덮어 조리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다.

솥뚜껑으로 전을 덮어 요리를 마무리 하는 것은, 신선한 햇파의 향이 휘발되지 않고 음식에 배이고 갖은 재료가 고루 익도록 뜸을 들이기 위함이다. 이렇게 부산(釜山)이라는 의미가 담긴 솥뚜껑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은 동래파전이 왜 부산 음식일 수밖에 없는지를 마지막까지 웅변하는 듯하다.

이는 옛 부산이 이제는 변방지역으로만 취급받을 장소가 아님을 다시 되돌아보도록, 지역의 모든 것을 담아 부산의 의미를 알리고자 한 선인들의 정성와 노력이 동래파전이라는 음식으로 우리에게 지금까지 전달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고려 때의 문인 정서가 귀양지인 동래에서 왕에게 자신의 지극한 마음을 담아 노래로 전했던 「정과정곡」처럼.

♣ 역사의 물길처럼 변화를 겪었던 동래파전

동래파전은 군사적 요충지와 일본 교역의 중심지로 부각된 동래의 역사와 함께 옛 부산의 지형 안에서 훌륭한 식재료를 가지고 맛과 흥을 돋우던 음식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흥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하고. 1910년에 국가가 수탈 당함에 따라 이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은 남의 나라, 일본의 병참기지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동래파전은 전통적인 잔치 음식으로 즐기기 힘들었고, 부산이 급격하게 근대화되면서 그 자취가 사라질 뻔했다.

그러다 1930년대 과거 동래부의 관기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기생이 되기도 했는데, 그 기생들이 관기 시절에 맛보았던 동래파전을 술안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동래파전은 옛 부산의 정취와 흥을 전했던 잔치 음식의 전통은 희미해져 갔지만, 술집에서 유흥을 돋우는 특별한 먹을거리로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제는 부산항을 교두보로 하여 군사적 요충지를 확보한 다음, 부산의 전통이 살아 숨쉬던 동래를 일본인들이 쉴수 있는 관광지역으로 점차 바꿔 나갔다. 여관, 술집, 온천, 식당, 기차역, 시장 등이 들어서고 동래의 주산(主山)인 금정산은 여행객들의 등산로로 개발되었다.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던 문화가 퇴색해가는 동시에 상업화 되어가는 근대적 변화 앞에서 동래는 유흥과 관광을 즐기는 곳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과정 속에서 동래파전도 양반들이 즐기던 화려하고 복잡한 전통적 조리방식을 벗어나 대중적인 음식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래서 파와 해물에 고기가 섞인 특별한 ‘해물파전’ 정도의 별미 거리로 그 맛이 대중에게까지 전파되었다. 1960대에 들면서 동래파전은 대중식당이나 동래시장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고, 기존의 고급스런 전에서 값싸고 맛있는 전으로 탈바꿈함으로써 부산 사람들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로 유명해졌다.

이제는 부산의 곳곳에서 동래파전을 쉽게 먹을 수 있고, 심지어 서울에서도 동래파전을 맛볼 수 있지만 모두 전통적인 동래파전의 조리방식을 개량한 것이다.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다 보니 해물파전을 조리해 먹는 맛과 차별성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동래파전에 들어가는 재료의 특성들 중 다른 전에 비해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 ‘동래해물파전’이라고 흔히 말하기도 한다.

이미 동래파전이란 이름은 있어 왔지만, 이러한 이름의 유래와 역사성을 알지 못하고 해물파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잘 팔려고만 하다 보니 상업적인 이름으로 동래파전은 ‘동래해물파전’으로까지 불리게 된 것이다.

양반음식에서 술집 고급안주로, 시장에서 즐기는 별미로, 이제는 타 지역에서도 동래해물파전이란 이름으로 즐길 수 있게 된 동래파전은 지역에서 길러낸 햇파의 향과 강과 바다에서 갓 잡은 해물의 신선함, 부산의 향토적인 맛을 전하고 싶은 진정성을 잃은 초라한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동래파전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동래파전의 이야기를 지금도 할 수 있게 된 이유이다. 이제는 지역의 재료를 담아내지 못하는 음식이 되었더라도 지역을 생각하는 힘은 아직도 동래파전 안에 부산의 산, 들, 강, 바다의 의미로 여전히 녹아있다.

*전유어(煎油魚)

생선, 육류, 채소 등의 재료를 얇게 썰어 밀가루와 달걀에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의 총칭. 궁중에서는 전유화(煎油花), 전유어(煎油魚)라고 하며, 보통 전, 저냐라고도 한다.

참고 : 손정연, 「한국의 식문화사」, 도서출판 진로, 2009

**밴댕이(디포리)

밴댕이(디포리)

청어목(과)에 속하는 바다생선으로 짧막한 멸치와 같이 생겼다. 예부터 많이 잡히는 생선으로 구이, 젓갈 등 다양한 요리로 즐겨먹었다. 국물을 낼 때 멸치 육수만큼 진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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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부산광역시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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