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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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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2. 한국인의 힘, 밥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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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녹색혁명으로 보릿고개를 넘다

보통 5~6월 추수한 쌀이 다 떨어지고 심어놓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을 것이 부족한 봄철 기근을 일컬어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보리는 오랜 세월 대중과 함께한 식량 작물입니다.

가장 오래된 식량작물이 보리이고,쌀이 대중화되기 전 우리 민족의 주식이 되었던 작물이 바로 보리입니다. 보리가 여물 때까지 어떻게든 기근을 버텨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아픔이 서린 것이 보릿고개입니다.

우리나라는 1906년 권업모범장을 설립해 최초로 재래종을 수집하고 품종개량에 나섰습니다. 당시 쌀 평균 생산량은 현재의 절반도 안되는 237kg/10a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신품종이 도입돼 쌀 생산량이 320~360kg까지 늘었지요.

하지만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국민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배불리 밥을 먹게된 것은 불과 40여 년 전부터 입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당시 작물시험장)의 혼신의 노력에 따른 성과이지요.

통일벼 서울대 허문회교수

1964년 작물시험장 전문가들과 서울대 허문회교수가 만든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혼합종이 탄생하게 됩니다. 자포니카와 대만 재래종을 교배시킨 뒤 다시 인디카와 교배시키는 3원 교배를 통해 ‘통일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통일벼는 기존의 자포니카 품종보다 30%나 생산성이 높았습니다. 통일벼는 1970년부터 농가에 보급되었고 1976년부터 쌀 자급에 성공했습니다. 1978년에 벼 재배면적 76.2%의 쌀을 통일벼를 통해 얻었고 생산량도 평균 500kg/10a 가까이 올랐죠.

전국민이 하얀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것, 우리는 이것을 ‘녹색혁명’이라 부릅니다. 미주씨는 자신이 자라면서 쌀 부족 현상은 점점 줄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게 다 녹색혁명 덕분이었구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쌀이 없어 배곯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쌀로 인해 농부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에 웬지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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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인천광역시 농업기술센터 •인천서구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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