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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3. 비빔밥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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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1400~1700년대 문헌에 나타난 비빔밥

♣ 고문헌 속에서 비빔밥이 등장하다

비빔밥의 역사와 문화사와 관련된 기록이 1400년대부터 찾아봐도 100여건 이상의 기록이 나온다. 기록의 종류는 시, 역사서, 조리서 등 다양한 문헌 유형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밥이 우리네 일상 생활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과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어느 시대나 어느 상황에서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밥은 하루 세끼 매일 먹어야 된다는 접근성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다양한 기록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 1400년대 문헌에 나타난 비빔밥

연대별 문헌명 저자 비빔밥 문헌
1415년 명나라 성조(成祖: 永樂帝) 성리대전(性理大全)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 골동갱(汨董羹)

□ 『성리대전(性理大全, 1415)』

『성리대전(性理大全)』의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에서도 비벼서 먹는 음식이 있는데 이를 ‘골동갱(汨董羹)’이라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사계전서(沙溪全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한(閒)은 한만(閒漫)이다. 골동(汨董)은 《성리대전보주(性理大全補註)》에 의하면 , 남방 사람들이 물고기와 살코기를 뒤섞어 밥속에 두는 것을 골동갱(汨董羹)이라 하니, 어지럽게 뒤섞여 분리되지 않은 일을 말한다. 한어(漢語)에서는 골(汨) 자를 목(木) 변에 쓰고 있는데, 한골동(閒董)이란 썩은 나무둥치와 같다.

1400~1700년대 비빔밥 No1.
『사계전서(沙溪全書)』, 汨董羹 [출처: 한국고전종합DB ]

이 대목을 본다면 이 때의 ‘골동갱(汨董羹)’이라 함은 어지럽게 뒤섞인 일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500년대 문헌에 나타난 비빔밥

연대별 문헌명 저자 비빔밥 문헌
1527년 훈몽자회(訓蒙字會) 최세진 ‘부뷔움골(骨)’
1591~1592년 (조선중기) 기재잡기(寄齋雜記) 박동량 혼돈반(混沌飯)

□ 『훈몽자회 ( 訓蒙字會, 1527, 최세진 )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밥을 비벼서 먹으므로 ‘부뷔움 골(骨)’자를 썼음을 알 수 있다.

1400~1700년대 비빔밥 No2.
『훈몽자회 ( 訓蒙字會, 1527, 최세진 )』

□ 박동량 『기재잡기 (寄齋雜記) (1591~1592년 일기)』

조선 중기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이 쓴『기재잡기(寄齋雜記)』에는 비빔밥을 ‘혼돈반(混沌飯)’이라고 기록하였다.

遂以飯一盆。襍以魚菜。如俗所謂混沌飯。酒一角杯可容三壺者饋之。霖 乃 數 匙 而盡其飯。一倒而傾其盃。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 (混沌飯 )과 같이 만들고...

1400~1700년대 비빔밥 No3.
『기재잡기』, 混沌飯 [ 출처: 한국고전종합DB ]

♣ 1700년대 문헌에 나타난 비빔밥

연대별 문헌명 저자 비빔밥 문헌
조선왕조실록 정조 7년게묘(1783년) 조선왕조실록 공조 판서 정민시 골동반(汨董飯)
1798년 무오년 정조 심리록 제31권 (어지러울골)(비빔밥동) 골동(汨董)
1799~1801 홍재전서(弘齋全書) 조선시대 정조의 시문집 골동반(汨董飯)

□ 『조선왕조실록 정조 7년 게묘』

조선 중기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이 쓴 『기재잡기(寄齋雜記)』에는 비빔밥을 ‘혼돈반(混沌飯)’이라고 기록하였다.

而士夫之間, 不以名節相尙, 朝著之上, 不以廉恥爲重。泯泯棼棼, 便作虛僞, 汨蕫世界, 得罪淸議而無所拘, 行己鄙悖而不見棄, 則行檢無所用矣。 少者不 難於侮老成, 賤者不難 於凌尊貴, 則風俗從以壤矣。

어둡고 어지러워져 그만 허위가 판을 치는 골동반(汨董飯)과 같은 세상이라, 청의(淸議)에 죄를 얻어도 구애(拘碍)될 것이 없고 행신이 비루하고 패리(悖理) 해도 버림받지 아니하여, 행검(行檢)이 쓸 데가 없게 되고, 젊은 사람 이 노인을 모욕하는 일이 어려울 것 없고 미천한 사람이 존귀(尊貴)한 자를 능멸하는 일이 어려울 것 없게 되어, 따라서 풍속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1400~1700년대 비빔밥 No4.
『조선왕조실록 정조 7년 게묘』(1783년 7월 4일, 선정에 대한 공조 판서 정민시의 상소문)

이 책은 세상사가 온통 비빔밥같이 어지러운 개판이라 정치 좀 잘해 보라는 요지의 내용이다. 한때 비빔밥은 마구 뒤섞여 꼴 보기 싫은 것의 대명사였다. 위의 기사는 1783년 정조 7년의 왕조실록 기사로 비빔밥은 18세기에도 이미 대중화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심리록 제31권, 무오년 (1798 )』

비빔밥의 한자어인 골동반(汨董飯) 은 고문헌 『심리록 제31권, 무오년(1798)』에도 표기되어 있듯이 ‘어지러울 골’의 골(汨)자, ‘비빔밥 동’ 동(董)자를 사용하며 여기서 골동(汨董)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한군데 담아 섞는 것을 말한다.

비빔밥의 뜻은 지어 놓은 밥을 그릇의 반 정도로 담고 여러 가지 재료의 반찬이나 식재료를 섞어서 한데 비벼먹는 것이니 비빔밥과 골동반이 같은 의미를 가진 음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골동(汨董)은 골동(骨董)과 같은 말로, 잡되다는 뜻이다.『성리대전(性理大全)』 보주(補註)에, 강남 사람들이 물고기와 채소 등을 함께 섞어서 끓인 국을 골동갱(骨董羹)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골동반도 이와 같은 말로 뒤섞이고 혼란스런 일을 지칭한다.

1400~1700년대 비빔밥 No5.
『심리록(審理錄) 제31권, 무오년(1798)』, 汨董飯

□ 『홍재전서 (弘齋全書) (1799~1801)』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는 비빔밥이 ‘골동반(汨董飯)’으로 소개되고 있다.

1400~1700년대 비빔밥 No6.
『홍재전서(弘齋全書))』, 汨董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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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NIA) •한국식품연구원(KF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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