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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구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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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돼지갈비

돼지고기는 크게 등심·방아살·어깨살·뒷다리·갈비로 나누어지며, 지방이 적고 연한 부분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현재는 갖은 양념을 한 등심이나 갈비, 그냥 구워서 소금에 찍어먹는 삼겹살을 즐겨 먹으며, 계피 등을 써서 냄새를 없앤 돼지족도 인기식품 중의 하나이다.

그 밖에 저민 돼지간에 메밀가루를 묻혀서 기름에 지진 간전,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삶아서 얇게 저민 수육·편육을 비롯하여 갈비찜·완자전 등의 음식과 순대, 서양식으로 가공한 소시지 등 다양하게 조리되고 있다. 부산물인 털은 칫솔·옷솔의 원료로 이용되고, 가죽은 피혁으로 이용된다.

돼지갈비 맛있는 한식이야기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에 희생으로 쓰여진 동물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희생으로 교시(郊豕)에 관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유리왕 19년(기원전 1) 8월에 교시가 달아나므로 왕이 탁리 와 사비 라는 자로 하여금 뒤를 쫓게 하였더니 장옥택(長屋澤) 중에 이르러서 돼지를 찾아 각근(脚筋)을 끊었는데, 이 사실을 왕이 듣고 “제천(祭天)할 희생을 어찌 상할 것이냐.” 하고 두 사람을 갱중(坑中)에 넣어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제천의 희생으로 돼지를 길렀으며 이 돼지는 매우 신성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유리왕 21년 3월에도 달아나는 교시를 뒤쫓다가 국내위나암(國內尉那巖)에 이르러 산수가 심험(深險)함을 보고 국도(國都)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산상왕이 아들이 없었는데, 왕 12년 11월에 달아나는 교시를 좇아 주통촌(酒桶村)에 이르러 어떤 처녀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게 되어 이 처녀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는바, 아들의 이름을 ‘교체(郊彘)’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고구려에서는 희생으로 쓰이는 돼지가 신이한 예언적 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삼국사기』 잡지(雜志)에도 『고기 古記』를 인용하여, 고구려는 항상 삼월 삼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한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산돼지가 조선시대 납향(臘享)에 제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동지 후 세번째 미일 을 납일로 정하여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산돼지와 산토끼를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도 내의 산간지방 수령들은 산돼지를 잡으려고 온 군민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관습은 폐단이 있어 정조 때부터는 서울의 포수들을 시켜 산돼지를 사냥해 오도록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무당의 큰 굿에서나 동제(洞祭)에는 돼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다. 굿에서는 돼지머리만을 제물로 쓰는 경우가 많고 동제에서는 온 돼지를 희생으로 사용한다. 돼지는 지신의 상징으로도 인식되었다.

엄청난 가격의 쇠갈비에 비해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육질 역시 훨씬 부드러워 부담 없이 즐기는 돼지갈비는 돼지의 옆구리 갈비의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에 이르는 부위를 일컫는다. 특유의 누린내 때문에 쇠갈비와 달리 주로 양념을 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장 양념 돼지갈비 맛있는 한식이야기
▲ 간장 양념 돼지갈비

그러므로 돼지 갈비 맛의 성패는 바로 양념에 달려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간장 양념이든 고추장 양념이든 돼지갈비에는 생강즙을 넉넉히 넣어야 누린내가 사라지고 고기도 연해진다. 또 갈비에 칼집을 깊숙이 넣으면 양념이 속까지 고루 스며들고 맛도 좋아진다. 물론 갈비뼈에 붙은 살을 쉽게 발라낼 수 있어 먹기에도 훨씬 편하다.

이처럼 서민들에게 소보다 더 친근한 맛인 돼지의 갈비를 이용한 돼지갈비 전문점이 밀집되어 있어 유명해진 곳은 마포 돼지갈비거리이다. 해방 부터 1950년 전까지 마포 포구에는 배가 드나들었고 한강을 따라 내려온 목재는 마포를 통해 도심으로 들어왔다.

때문에 주변에는 제재소가 많이 있었고, 수상교통 요충지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 각 지방으로부터 오는 곡물을 저장하는 저장소역할도 했다.

제재소에서 나는 나무톱밥 먼지로 인해 근처 인부들은 기름진 돼지고기와 시원한 막걸리를 찾게 되었고, 마포를 통해 들어오는 새우젓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안주로 파는 주막형태의 대폿집을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철도가 생기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강화만이 막혀 한강으로 들어오는 배 출입이 금해지면서 마포의 포구문화도 퇴색하였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대폿집에서 발전된 형태의 돼지갈비음식점들이 지금의 만리동 고갯길 부근 텍사스골목에 형성되었다.

이 점포들은 주변의 상인과 인부들을 상대로 고기를 한 점,한 대씩 단위로 저렴하게 팔면서 술 매상을 올리는 전략으로 명성을 더해갔다.

마포 돼지갈비 맛있는 한식이야기
▲ 마포 돼지갈비

1970년대 후반에는 불고기감이나 국거리로만 사용되던 돼지목살을 구이용으로 처음선보이기도 했고 소금구이도 시도해 1980년대 초반까지 비슷한 형태의 음식점들이 밀집되어 갈비거리를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돼지갈비는 서민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깔끔한 현대식 외양에 연기를 빨아들일 수 있는 장치가 식탁마다 마련되어 있는 현대식 모습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돼지갈비집이다. 일반적으로 돼지갈비 집은 드럼통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 보통이었다.

커다란 드럼통 안에 연탄을 피워 넣고 위에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쇠판을 마련해 놓고는 등받이 없이 엉덩이만 간신히 걸칠 수 있는 동그란 의자 몇 개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것이 돼지고기집 풍경이었다. 따지고 보면 돼지고기집의 이러한 인테리어는 미학적으로 볼 때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것이다.

군데군데 녹이 슨 낡고 찌그러진 드럼통에 역시 동그란 의자들. 격식과 예의를 구태여 따지지 않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불청객이 오면 또 오는 대로 둥글고 작은 의자를 옆에서 끌어다 끼워 넣으면 넷이든 다섯이든 같이 먹을 수 있던 것이 돼지갈비집이었다.

물론 고기 굽는 연기를 빼기 위해 출입문이든 창문이든 다 열어제끼고 말이다. 이 둥글고 좁은 식탁에는 역시 그리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소주병과 작은 소주잔들이 놓여지게 마련이었다.

탁자도 의자도 연탄도 불판도 소주잔도, 그리고 사람들도 둥글게 둥글게 모여 앉아 있던 돼지갈비 집 풍경. 값이 저렴한 돼지갈비는 주인장의 인심도 둥글둥글해서 “아저씨, 고기가 너무 적다, 여기 이인분 추가하는데 좀 많이 줘요”라고 소리치면 예외 없이 추가된 고기는 처음보다 넉넉히 내주는 것 또한 흔한 일이었다.

고기구이집 드럼통 식탁 맛있는 한식이야기
▲ 고기구이집 드럼통 식탁

서민들의 음식답게 곁들여지는 접시도 풋고추나 오이에 상추와 깻잎, 된장쌈장이면 소주와 함께 충분한 것이었다. 막노동에 지친 일꾼들과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 격식없는 분위기를 찾아 편하게 취해보고 싶은 아줌마들이 여기저기 둥글게 모여 앉아 밤늦는 줄 모르고 왁자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이 바로 돼지갈비집이다.

또한 돼지갈비에는 상추나 쑥갓 혹은 깻잎, 마늘 같은 채소를 곁들여 먹는데 이렇게 먹어야 영양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서양과는 달리 고기요리를 영양적으로 균형 있게 먹고 있다. 또한 직접 불판위에서 지글 지글 구워 먹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인상적이어서 외국의 유명 신문에 색다른 한국의 고기요리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 30년 전통! 양념돼지갈비 [2TV 생생정보]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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