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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기젓
  • 조기젓

    지역 아시아 > 충청도 > 충청남도 아산시
    분류 발효음식 > 장(醬).젓갈
    자료보유 충청남도 아산시 예안 이씨 참판댁
    자료기록 아산 예안 이씨 이정열 종가
    제작년도 2014
    제작기관 세계김치연구소
    레시피 기초

요리 재료
조기 1.5kg, 소금 2kg
Step 1.
1. 조기는 흐르는 물에 씻어 채반에 받쳐 물기를 뺀다.
Step 2.
2. 항아리에 조기와 소금을 켜켜이 넣는다.
Step 3.
3. 맨 위에 웃소금을 두껍게 올리고 뚜껑을 덮어 숙성시킨다.
조리 참고
● 조기는 비늘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소금에 켜켜이 묻어 숙성시켜 두었다가 꺼내 먹을 때 비늘을 벗기고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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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아산 예안 이씨 이정열 종가 내력

최황규 종부는 충남 청양에서 시집왔다. 면암 최익현(1833년~1906년)의 고손녀로 명망 있는 가문에 신식 교육까지 받은 재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종가에 시집온 후로도 종부의 삶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친정어머니에 비하면 고생한 것도 아니라며 겸손해한다.

아산 예안이씨 공간
<아산 예안이씨 공간>

아산 예안 이씨 종가는 손님맞이가 끝이 없어 정월이면 술상을 차리고 떡국을 만드느라 밥을 해 먹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살뜰하게 챙겨 주셔서 마음만큼은 여유로웠다고 한다. 최황규 종부에 따르면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걸음걸이까지 살펴 힘들 때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넸고, 시어머니도 남편과 떨어져 홀로 시집살이를 했던 며느리를 늘 안타까워했다.

현재 그는 큰며느리에게 아산 예안 이씨 종가의 내림 음식을 틈틈이 가르치고 있다. 큰며느리는 기특하게도 직장 생활을 하느라 바쁜 틈에도 필요할 때마다 종가에 내려와 배움을 자처한다. 최황규 종부는 그런 큰며느리를 보면서 요즘 며느리들은 지혜로워서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 이상을 금세 알아차린다며 흡족한 얼굴이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가문의 내림 손맛이 자신을 통해 며느리로, 그리고 그 후대로 계속 전승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아산 예안이씨 최황규 종부
<최황규 종부>

이득선 종손은 일생을 한학자로 살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 옆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버지를 추모하며 시묘살이를 했다. 가족이 해체되고 효의 의미마저 퇴색되는 현대에 그는 유교의 관혼상제 중 가장 고난도의 의례라는 시묘살이를 묵묵히 실천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서른이었다.

서울의 명문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전도유망한 건축학도의 꿈을 꾸던 그였지만 부친상을 당하자 망설임 없이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많지 않은 나이였으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시묘살이를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당연히 해야 할 자식의 도리이자 부모에 대한 보은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3년 동안 마루에서 잠을 자며 자식의 예를 다하였다.

이득선 종손
<이득선 종손>

도시 생활이 익숙한 그이지만 종가에 대한 자부심만은 옛 선비 못지않다. 세월의 부침 속에 전답은 모두 해체되고 집 한 채 겨우 남은 상태지만, 이득선 종손은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나가야 할 전통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시묘살이가 끝난 후로는 가문에 남아 있는 다양한 민속자료들을 공부하고 배움을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덕분에 지금은 ‘걸어 다니는 민속학 사전’이라 불릴 만큼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깊다. 언제나 대문을 활짝 열어 두고 누구든 대화를 청하면 따뜻한 얼굴로 맞아 주는 그는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우리 전통의 우수성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알려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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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가의 공간과 조리 기구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자리한 외암 민속마을은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 종9품의 벼슬)을 지낸 이정 일가가 낙향하여 정착하면서, 지난 400여 년 동안 아산 예안 이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마을 뒤에 설화산이 자리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인 이곳 마을은 이정의 6대손인 이간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모습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으면서 외암마을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는 조선 시대 참판을 지냈던 이정렬이 고종에게 하사 받은 집이라 하여 참판댁으로 불리며,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될 만큼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충청 지방 고유의 격식과 기품을 갖춘 고택은 멋스러운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종가의 정신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사당도 그대로 남아 있다.

외암리 민속마을 참판댁
<외암리 민속마을 참판댁>

아산 예안 이씨 종가의 장독대는 창덕궁 낙선재 장독대의 모양과 구조가 동일하다. 이는 규장각의 직학사(直學士)와 참판을 지냈던 이정렬이 고종으로부터 하사 받은 집이라, 당시 낙선재의 모습을 본떠 지었기 때문이다. 장독대 담장에는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는 장독대의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터줏대감은 터신 즉 집터를 지켜주는 신으로, 여러 곡물이 든 항아리 위에 짚가리를 덮어 집 안 뒤뜰이나 장독대 부근에 모신다. 여전히 터줏대감을 장독대에 모시고 있음은 그만큼 종가에서 장독대가 차지하는 공간적 의의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 장독대
<아산 예안 이씨 종가 장독대>

우리 조상들은 더운 여름에 김치를 저장하기 위해 석정(石井)과 겹항아리를 사용하였다. 냇가나 우물가에 돌을 쌓아 석정을 마련하고, 그 안에 겹항아리를 넣어 차가운 물이 독을 타고 흐르면서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하였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에서는 마을 인근에 자리한 폭포 아래에 겹항아리를 두었다.

이득선 종손에 따르면 겹항아리는 항아리 어깨 부분에 물이 흐를 수 있는 턱을 만들어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이 턱을 돌아 흘러내릴 수 있도록 안쪽 한두 군데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대대로 내려오던 겹항아리가 안타깝게도 깨져 다시 제작하려 했으나, 현대의 기술로는 그 오묘한 이치를 재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에서는 이 같은 겹항아리에 주로 동치미를 보관했는데 속이 더부룩하거나 복통이 있을 때, 가벼운 두통이 날 때 등 몸이 불편할 때마다 조금씩 먹었다고 하여 약지 김치로도 불렸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 김치광
<아산 예안 이씨 종가 김치광>

김치광이란 땅에 김칫독을 묻고 그 위에 가는 통나무를 원뿔 모양으로 세운 후 짚을 덮어 작은 움집을 만든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하면 눈과 비를 피하는 것은 물론 땅속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김치의 숙성과 저장성도 좋아진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의 김치광은 나무판자를 이어 광처럼 만들어 사용했는데, 태풍 때 모두 날아가 버려 지금은 김칫독만 남아 있다.

종가의 김치광은 비가 와도 물이 금방 빠질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김칫독을 묻을 때도 땅을 판 후 습기가 차지 않도록 쌀겨를 5cm 정도 쌓아 두고 흙을 덮은 후 바닥을 다진다. 독을 묻은 후에는 짚을 엮어 김칫독 주변에 빙 둘러놓는데, 이는 비가 내려도 흙이나 물이 김칫독으로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종가의 김치광에는 조상의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아산 예안 이씨 종가 연엽주
<아산 예안 이씨 종가 연엽주>

연엽주는 이득선 종손의 5대조인 이원집이 개발한 전통주로, 당시 혹독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림에 빠지자 임금은 금주령을 내리고 관직에 있던 이원집 역시 술을 일절 들지 않았다. 그러나 궁중 제사에 쓸 제주가 필요했고, 왕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약주를 개발하고자 연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연엽주였다.

연엽주는 이름 그대로 연잎을 곁들여 쌀로 빚는 술로 그 향이 독특해 임금도 즐겨 마셨다고 한다. 또 도수가 낮아 순하고 감칠맛이 나면서도 단맛이 없어 애주가들이 사랑하는 술이다. 조금씩 약주로 마시면 피를 맑게 하고 혈관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 충남무형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이득선 종손과 최황규 종부는 지금도 이 연엽주를 직접 담근다. 기계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는데 그 정성이 실로 대단하다. 그 때문에 집안 곳곳에 술을 거르는 용수, 항아리 등의 도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자료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세계김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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