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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5. 먹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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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수원 왕갈비에서 LA갈비까지 ‘가리구이’의 맛깔스러운 여정

수원 왕갈비에서 LA갈비까지 ‘가리구이’의 맛깔스러운 여정

‘가리’는 갈비의 옛말이다. 해방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갈비찜이나 갈비구이를 만드는 갈비는 소갈비를 의미했으니, 가리구이 즉 갈비구이는 소갈비로 만든 구이 요리를 뜻한다. 예나 지금이나 귀한 고급 한식 메뉴로 손꼽히는 갈비구이의 여정을 되짚어 본다.

♣ 예나 지금이나 귀한 소고기를 굽다

갈비구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에 당시 음식을 조리법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한 조리서인 <시의전서>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농서인 <임원십육지>에 갈비구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재야 지식인이었던 이용기 선생이 정리한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갈비구이를 양념하고 먹는 법이 자세히 적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소고기는 예로부터 귀하디귀한 식재료였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국가에서 소를 관리하여 자기 소유의 소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다. 소는 농우로서 농사를 짓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꾼이었던 것이다.

고려 말인 충숙왕 12년(1325)에는 ‘소나 말을 도살하는 자를 벌한다’는 명이 내려졌고, 조선시대에도 소의 도축을 금하는 ‘도우금지령’이 내려지는 등 국가적으로 농우 보호를 위해 애썼다. 하지만 갈비구이를 안 먹어본 자는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터.

남몰래 소를 잡거나, 소가 다치고 병들었다고 거짓으로 신고하고 도축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사연과 꼼수로 소를 잡고 화롯불에 둘러앉아 갈비를 구워 먹었을 옛사람들의 표정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최근까지만 해도 갈비는 명절이나 잔치 때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부위였다고 한다. 갈비는 고깃간에서 ‘짝’으로만 팔았는데, 짝이란 소갈비의 한쪽을 뜻한다. 결국 소 한 마리에서 두 짝의 갈비가 나오는 셈이니 평소에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갈비구이를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1939년경 서울 낙원동에 있는 평양냉면집에서 냉면과 함께 가리구이를 낱개로 팔면서부터라고 한다. 가리를 갈비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평양냉면집 가리구이

♣ 수원 왕갈비로 꽃피우는 갈비구이

갈비구이 하면 수원 왕갈비를 빼놓을 수 없다. 1940년대 고 이귀성 씨가 수원 갈비의 원조인 ‘화춘옥’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갈비를 넣은 해장국을 팔면서 인기를 끌었고, 1956년부터 갈비구이를 팔기 시작하며 주변 도시의 미식가들을 끌어모았다고 한다.

신익희, 박정희 등 정치인들이 자주 방문해 더욱 유명해졌다. 1979년 화춘옥 자리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한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동수원 대로변에 갈비촌이 형성되면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원 갈비의 특징은 ‘왕갈비’라 불리는 것처럼 길이가 10~13cm로 크며, 간장 등 조미료를 쓰지 않고 소금으로만 양념을 한다는 것이다.

소갈비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수원이 이처럼 갈비구이의 성지가 된 것은 수원화성과 관련이 깊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축조하며 서쪽에 둔전(궁과 관아에 딸렸던 밭)을 내려 농사를 짓도록 했으며, 농민들에게 송아지를 한 마리씩 나눠주고 3년 뒤에 갚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수원에 소가 많아졌고, 화성 동쪽의 문인 창룡문 밖에는 ‘소가 가득한 동네’가 생겨났다. 지금 그 지역이 바로 우만동이다. 전국 3대 우시장 중 하나가 수원에 자리했던 이유다. 이에 더해 수원은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안성, 용인, 여주, 이천, 평택 등 인근의 농수산물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먹거리가 발달할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수원에서 활짝 핀 갈비구이의 꽃은 다른 지역으로까지 퍼져나갔다. 1950~60년대에는 경기도 포천군 일대에 ‘이동갈비’가 생겨나 갈비구이 촌락을 이뤘다. 경기 북부의 군인들이 주요 고객이었고, 1970년대 도로가 포장되어 교통이 좋아지면서 수도권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원왕갈비

부산의 ‘해운대갈비’도 유명하다. 1960년대 초부터 유명해졌는데, 둥그런 불고기판을 사용해 간장양념에 잰 갈비를 구워 먹고 난 후, 양념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던 LA갈비도 갈비구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LA갈비는 통 갈빗대를 뼈와 직각 방향으로 잘라서 중간중간에 조그만 갈비뼈가 붙어있는 형태를 말하는데, 그 명칭에는 여러 설이 있다.

미국 LA에 사는 한인들이 갈비를 어슷하게 썰어서 양념한 후 석쇠에 구워 먹은 데서 연유했다거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LA의 지역명을 작명에 활용했다는 설도 있다. 가장 유력한 이야기로는 고기가 썰리는 방향이 ‘측면’이니 그것을 의미하는 ‘lateral’의 앞 두글자를 따서 LA갈비가 되었다는 설이다.

소고기를 써는 방향이나 양념하는 방법은 취향의 문제일 뿐, 갈비구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턱내고 싶을 때 떠올리는 고급 음식이라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앞으로 또 어떤 갈비구이가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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