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입, 아직은 체감상 겨울의 한 가운데. 불평처럼 ‘춥다’는 말만 내뱉기엔 이 계절의 매력이 너무나 눈부시다. 특히 전라북도 무주는 겨울 여행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다.
맵디매운 겨울 추위도 상고대로 뒤덮인 덕유산의 설경이라면 감내할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달콤한 머루와인, 구수한 어죽 한 그릇이면 그 기운으로 1년은 거뜬히 날 수 있을 듯하다.
♣ 무주 여행의 백미, 겨울 덕유산
눈 깜짝할 사이 한 달이 지나가 버렸다. 더욱이 끝나지 않는 코로나 때문에 새해의 기분을 만끽할 새도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새해의 기운을 맞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간 곳은 ‘겨울은 덕유산’이라는 실패 없는 공식을 떠올리게 하는 무주.
겨울의 무주는 ‘덕유산’으로 대표되는 상징적인 풍경이 감히 새해맞이 일출을 밀어낼 만큼의 장엄함을 품고 있다. 무주는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면면을 간직한 곳이다.
흔히 무주의 사계를 백련사의 봄, 구천동의 여름, 적상산의 가을, 덕유산의 겨울로 표현할 만큼 어느 때 불쑥 찾아도 준비된 모습으로 최고의 풍광을 안겨준다. 그중에서도 덕유산의 겨울을 품은 무주는 무주 여행의 백미라 할 만하다.
덕유산에는 관광 곤돌라가 있어 덕유산 정상 아래 설천봉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한 10여 분 올라가려나 생각했는데, 곤돌라를 타고 해발 1,520m 설천봉까지 꼬박 20분이 걸렸다.
곤돌라가 설천봉까지 편안하게 데려다주었기에 20여 분만 더 걸어 올라가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 닿을 수 있다. 뽀드득거리는 눈길을 야무지게 밟으며 해발 1,614m의 정상에 올랐다.
누군가 일부러 뿌린 것처럼 나무마다 새하얀 눈꽃송이가 앉아 천상의 풍광을 연출한다. 마른 고목에도 눈송이가 내려앉으니 다시 생명을 얻은 것처럼 화사하다. 멀리 내다보니 어깨를 기댄 이름 모를 새하얀 산들이 끝없이 이어져 겨울 낭만을 더한다.
♣ 깨끗한 자연이 차린 무주의 맛
시린 백색의 풍경으로 눈과 마음의 허기를 채웠다면, 이번에는 진짜 배를 채울 시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옛말을 빌려 ‘덕유산도 식후경’이라 할 만한 무주지역의 다양한 산해진미를 소개할 때다. 무주에 왔다면 어죽과 민물매운탕은 반드시 먹어보아야 한다.
특히 ‘어죽은 무주에 와서 먹어보지 않으면 무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만큼 무주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금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를 넣고 푹 끓인 어죽은 감칠맛이 일품이다. 식욕이 없을 때라도 뜨끈한 어죽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절로 기운이 난다.
금강식당과 무주어죽 등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온 맛집이 즐비해 어디를 가더라도 만족할 만한 포만감을 채우고 나올 것이다. 빠가탕과 메기매운탕도 무주 식도락의 인기 메뉴.
금강 상류 지역과 구량천, 안창천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쏘가리, 메기, 자가미, 쉬리, 참붕어, 금강모치, 미꾸라지, 민물새우 등 각종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무주군의 맑은 물에서 잡은 민물고기에 집 앞 텃밭에서 기른 다양한 채소를 넣어 얼큰하게 끓여낸 매운탕은 고기 맛이 담백하고 국물 맛이 시원해 어지간한 겨울 추위는 눈 녹듯 사라진다.
읍내에 위치한 어복식당에서는 민물새우로 조리해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인 새우탕이 인기 메뉴이고, 덕유산 리조트 초입에 자리한 맛고을회관의 능이버섯전골은 향긋한 능이의 향과 뜨끈한 전골이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이외에도 덕유산자락 소나무 숲에서 자연 그대로 키운 원목 표고를 이용한 표고버섯 국밥과 표고버섯 탕수육도 놓칠 수 없는 무주의 별미다.
무주는 청정 자연을 부엌 삼아 지역의 손맛이 더해져 다양하고도 특별한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 미식 여행지이기도 하다. 이에 맛집을 따라 겨울 여행의 필수 코스를 계획해도 꽉 찬 여정을 세울 수 있다.
♣ 달콤한 향 가득한 이색 체험 명소
무주호를 따라 흐르는 풍경을 벗 삼아 드라이브하는 것도 겨울 무주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특히 무주양수발전소 홍보관 즈음에서 적상산을 마주하는 풍광은 사진으로 담아 두고두고 간직할 만하다.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면 마치 붉은 치마를 두른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이름 붙은 적상산은 우리나라 명산 중 하나다. 겨울에는 비록 산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무주호와 어우러진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감동을 준다.
무주호 인근에는 무주 특산품인 산머루 와인을 체험할 수 있는 머루와인동굴이 자리한다. 무주는 우리나라 최대의 머루 주산지로 연간 640여 톤의 머루를 생산한다. 특히 무주의 머루는 과실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인데 이는 머루의 생육환경에 그만인 토양과 기후를 갖춘 덕이다.
무주머루와인은 과즙이 풍부하며 비타민C 함량이 많은 고품질의 무주 머루를 사용해 만들기에 색깔과 선명도가 높고 머루 본연의 짙은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머루와인동굴에서는 무주를 대표하는 와인 양조장의 다양한 제품을 직접 시음해볼 수 있고, 직접 구매도 가능하니 와인 애호가라면 줄거운 목적지가 될 만하다. 마개를 열자 포도주와는 또 다른 달콤한 향이 후각을 자극하며 공간을 채운다.
동굴 안은 사계절 내내 14~16℃를 유지하고 있어 자칫 향기로운 머루 향에 정신이 팔리면 계절감을 잊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동굴 안에는 와인을 이용한 족욕장도 마련돼 있어 색다른 체험을 즐기며 잠시 여독을 털어내기에도 좋다.
♣ 무주의 옛 돌담길을 거니는 즐거움
마지막 여행지는 옛 선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벽정’으로 향했다. 그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국도에서 조그맣게 난 비포장 샛길로 접어들어서야 찾을 수 있다. 관광 명소라기보다는 옛사람이 살던 흔적을 찾아 나선 길이었기에 당연한 여정이다.
서벽정은 송시열의 후손이자 조선 시대 말 유학자였던 연재 송병선이 지은 집으로 당시 세태를 비관하고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이 지역 산세의 수려함에 반해 머문 곳으로 전해진다.
서벽정은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돼 관리하기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담장 밖에 가만히 머물다 보니 집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사방을 둘러싼 산이 포근함을 더해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로 아담한 집이지만 주변 경관은 지금 둘러봐도 한눈에 반할 만큼 절경이다. 송병선은 이곳에서 영호남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며 후진을 양성했다고 전해진다. 무주를 대표하는 관광지 목록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지전마을이다.
이 마을은 예부터 이어져 온 흙돌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20여 채 정도 될까. 발뒤꿈치를 들면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정겨운 시골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그마한 마을은 길을 따라 흙과 돌로 담을 쌓아 올린 돌담이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낸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돌담길을 따라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 좋다. 읍내에 위치한 지남공원 옆에는 호남 제1의 누각으로 불리는 한풍루가 자리한다. 이곳은 전주의 한벽당, 남원의 광한루와 더불어 호남의 아름다운 누각인 삼한(三寒)으로 꼽히는 명승지다.
2층 건물로 1층은 정면 세 칸, 측면 네 칸으로 이뤄져 있고, 2층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지었다. 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이라니 한풍루에 오르면 어떤 풍광일까 궁금했지만 직접 오를 수 없어 상상으로 대신해야 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겨울 비경을 마주하고, 그에 어울리는 고적한 곳을 거닐며, 맛있는 음식과 특별한 즐거움까지 고운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온 무주 여행. 한 해의 다짐을 재차 다잡기 위해 이맘때쯤 겨울 여행으로 기꺼이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